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한소영은 눈을 뜨자마자 낯선 천장을 봤다. 거칠게 깎인 통나무 들보가 머리 위로 교차하고, 그 사이로 이끼와 마른 풀이 엮인 지붕이 보였다. 코끝에 닿는 공기가 달랐다. 서울의 매캐한 배기가스도,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도 아닌 — 축축한 흙과 수액, 그리고 이름 모를 꽃향이 뒤섞인 냄새.
몸을 일으키자 등 아래에서 마른 풀더미가 바스락거렸다. 침대라고 부르기엔 민망한, 나무 틀 위에 건초를 쌓아 올린 것. 소영은 자기 몸을 내려다봤다. 입고 있던 건 아직 어제 — 아니,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날의 옷이었다. 졸업식 뒤풀이에서 입었던 흰 블라우스와 청바지. 손목의 시계는 멈춰 있었다. 오후 11시 47분에서.
통나무 오두막은 좁았다. 단칸방에 가까운 구조로, 한쪽 벽에 조잡한 선반이 달려 있고 그 위에 유리병 몇 개가 놓여 있었다. 안에 든 것은 말린 허브 같기도 하고, 가루약 같기도 했다. 반대편 벽에는 작은 화덕이 있었는데 불씨는 이미 꺼져 차가운 재만 남아 있었다. 문은 나무 판자를 이어 붙인 것으로, 가죽 경첩에 매달려 반쯤 열린 채였다.
그 틈으로 빛이 들어왔다. 금빛이 아니라 연둣빛에 가까운, 나뭇잎을 투과한 햇살.
소영은 맨발로 바닥에 내려섰다. 흙바닥이 발가락 사이로 차갑게 파고들었다. 한 발, 두 발. 문을 밀어 열자 숲이 펼쳐졌다.
거대했다.
나무들의 규모가 서울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크기였다. 줄기 둘레만 세 아름은 넘을 참나무 비슷한 것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고, 그 사이로 덩굴과 양치식물이 초록 장막을 이루고 있었다. 새소리가 들렸다 — 하지만 알고 있는 어떤 새의 울음과도 달랐다. 낮은 음에서 시작해 물방울이 튀는 것처럼 높은 음으로 흩어지는, 들어본 적 없는 선율.
그때 발밑에서 소리가 났다.
가늘고, 젖은 소리. 처음엔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문 앞 계단 — 이라고 하기엔 그냥 잘라 놓은 통나무 토막 — 아래에 뭔가 웅크리고 있었다.
새끼 여우였다.
수의대 6년이 반사적으로 작동했다. 소영은 무릎을 꿇었다. 솜털이 채 빠지지 않은 붉은 털, 크기로 보아 생후 두세 달. 오른쪽 앞다리가 부자연스러운 각도로 꺾여 있었고, 그 주변 털이 검붉은 피로 엉겨 붙어 있었다. 왼쪽 옆구리에도 긁힌 상처 세 줄이 나란히 — 발톱에 긁힌 것이다. 무언가에게 공격당한 흔적.
소영이 조심스럽게 손을 뻗자, 새끼 여우가 고개를 들었다. 동공이 공포로 쫙 벌어진 금빛 눈이 소영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소영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지금, 들린 건가. 목소리가 — 아니, 목소리라기보단, 의미가 직접 머릿속에 흘러든 것 같은 감각이었다. 말이라고 하기엔 너무 날것이고, 소리라고 하기엔 너무 선명한.
새끼 여우의 입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금빛 눈이 소영의 시선에 고정된 채, 다시 그 감각이 밀려왔다.
떨림이 담겨 있었다. 추위 때문인지 고통 때문인지, 아마 둘 다.
소영은 3초간 굳어 있었다. 뇌의 어떤 부분이 '이건 불가능하다’고 경고등을 켰고, 수의사로 훈련된 다른 부분이 '일단 치료부터’라고 명령을 내렸다. 후자가 이겼다.
“다리 좀 볼게. 안 아프게 할 테니까.”
거짓말이었다. 골절이 맞다면 정복 과정에서 아플 수밖에 없다.
소영은 새끼 여우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놀라울 정도로 가벼웠다. 오두막 안으로 돌아가 건초 위에 눕히고 선반의 유리병들을 하나씩 열어 냄새를 맡았다. 하나는 확실히 소독 효과가 있을 법한 알코올 비슷한 휘발성 액체, 다른 하나는 연고 질감의 녹색 풀 반죽. 나머지는 말린 약초 — 그중 하나에서 라벤더와 비슷한 진정 효과가 느껴졌다.
부목 대용으로 쓸 만한 나뭇가지를 문 밖에서 꺾어 왔다. 블라우스 소매를 뜯어 붕대 삼았다. 소독액으로 옆구리의 긁힌 상처를 닦자, 새끼 여우가 발버둥을 쳤다.
“알아, 알아. 미안. 조금만 참아.”
새끼 여우의 머리를 한 손으로 부드럽게 감싸며, 다른 손으로 상처 세정을 마쳤다. 녹색 연고를 긁힌 자리에 얇게 발랐다. 앞다리 골절은 — 촉진해보니 다행히 단순 골절이었다. 전위는 크지 않았다. 부목을 대고 찢은 천으로 단단히 고정했다. 실습 때 수백 번 했던 동작이 손에 남아 있었다.
처치를 끝내자 새끼 여우의 떨림이 조금 가라앉았다. 금빛 눈이 여전히 소영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경계와 고통 사이에서, 아주 미세하게, 다른 무언가가 섞여들고 있었다.
“……덜 아파. 조금.”
소영은 건초 위에 주저앉았다. 피 묻은 손을 내려다보며, 자기가 처한 상황의 무게가 비로소 내려앉았다.
여기가 어디인지 모른다. 어떻게 왔는지도 모른다. 돌아갈 수 있는지도. 그런데 방금, 동물의 말을 알아들었다. 동물이 자신의 말을 알아들었다.
밖에서 이름 모를 새가 물방울 같은 노래를 다시 불렀다. 숲의 연둣빛 햇살이 반쯤 열린 문 사이로 바닥에 줄무늬를 그렸다.
소영은 새끼 여우의 등을 천천히 쓸어주며, 아직 뛰고 있는 심장을 의식했다 — 자기 것인지, 여우의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배가 고팠다.
상황 파악도, 이 세계가 뭔지에 대한 고민도, 동물과 대화가 된다는 경이로움도 — 전부 공복 앞에서는 순서를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소영은 마지막으로 뭘 먹었는지 떠올려 봤다. 졸업식 뒤풀이에서 시킨 치킨. 그게 대체 몇 시간 전인지, 며칠 전인지도 알 수 없었다.
건초 위에 웅크린 새끼 여우가 소영의 움직임을 금빛 눈으로 따라갔다. 부목을 댄 앞다리를 몸 아래 감추듯 접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통증 때문에 완전히 접지 못하는 것 같았다.
“너도 배고프지?”
소영이 물었다. 대답은 감각으로 왔다 — 말이라기보다 흐릿한 이미지에 가까웠다. 엄마 여우의 따뜻한 배, 거기에 코를 묻고 젖을 빨던 기억. 그리고 그 온기가 사라진 뒤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텅 빈 허기의 감각.
“……알았어. 뭐라도 찾아올게.”
소영은 문 앞에 서서 숲을 살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일단 오두막에서 너무 멀리 가지 않는 범위로 정했다. 길을 잃으면 끝이니까.
맨발이 신경 쓰였다. 선반 아래를 뒤지자 닳아빠진 가죽 신 한 켤레가 나왔는데, 사이즈가 크긴 했지만 밑창이 두꺼워서 없는 것보단 나았다. 발을 끼워 넣고 문을 나섰다.
숲은 낮에도 어둑했다.
하지만 나무들 사이로 빛이 비치는 곳이 군데군데 있었고, 그런 양지 바른 틈에서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소영은 수의대 시절 교양으로 들었던 야생식물학 수업의 기억을 끌어올렸다. 반쯤 잊어버린 지식이었지만, '모르면 먹지 마라’는 첫 번째 원칙만큼은 선명했다.
오두막에서 이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폭은 한 걸음도 안 됐지만 물은 맑았고, 손을 담가보니 시렸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분명했다.
얕은 물가 돌 밑에 숨어있던 가재 비슷한 갑각류 네 마리. 집게가 달렸지만 민물 가재보다 작고 등껍질이 푸른빛이었다. 살아 움직이는 걸 보니 먹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개울가 축축한 흙에서 캐낸 뿌리 두어 개. 생김새가 우엉이나 도라지와 비슷했고, 꺾어보니 단면이 하얗고 전분질이 느껴졌다. 냄새를 맡았다 — 쓴 냄새나 자극적인 향은 없었다. 혀끝에 살짝 대 봤을 때 아린 맛도 없어서, 독성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오두막 뒤쪽 나무 아래에서 딴 열매 한 줌. 블루베리와 비슷한 크기에 색은 더 진한 남보라색이었고, 몇 개를 으깨 봤을 때 과즙이 달콤했다. 새들이 쪼아 먹은 흔적이 나뭇가지에 남아 있었으므로 — 새가 먹는 열매는 대체로 포유류에게도 안전하다 — 괜찮을 거라 믿었다.
풀숲에서 찾아낸 달걀 하나. 새 둥지가 낮은 관목 안쪽에 있었는데 알이 세 개 들어 있었다. 전부 가져가고 싶었지만 소영은 하나만 집었다. 나머지를 가져가면 어미 새가 둥지를 버릴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달걀은 메추리알보다 약간 큰 정도, 껍데기에 갈색 반점이 찍혀 있었다.
두 손에 전리품을 안고 오두막으로 돌아왔을 때, 고작 삼십 분 남짓 지났을 뿐인데 새끼 여우가 문 쪽을 향해 고개를 빼고 있었다. 소영이 들어서자 귀가 쫑긋 섰다.
“……왔어.”
짧았지만 그 안에 안도 비슷한 것이 섞여 있었다. 혼자 남겨질까 봐 불안했던 거다. 소영은 여우의 이마를 손가락 등으로 살짝 쓸어 주며 전리품을 선반 위에 내려놓았다.
화덕에 불을 붙이는 데만 이십 분이 걸렸다.
부싯돌 비슷한 돌 두 개가 화덕 옆에 놓여 있었는데, 부딪히는 방법을 몰라 시행착오를 반복했다. 손가락 마디가 까졌고 손톱 밑에 검댕이 꼈다. 마른 이끼를 불쏘시개 삼아 겨우 불꽃을 옮겨 붙였을 때, 작은 성취감이 가슴 밑에서 미지근하게 피어올랐다.
조리 도구라고는 선반 구석에서 찾아낸 주석 냄비 하나와 나무 국자뿐이었다. 냄비에 개울물을 받아 와 끓이면서 뿌리를 얇게 찢었다 — 칼이 없어서 손톱과 날카로운 돌로. 갑각류는 물에 한번 헹궈서 흙을 털어냈다. 달걀은 아껴두었다가 마지막에 풀어 넣기로 했다.
뿌리가 반투명해질 때까지 끓이자 전분이 풀려 국물이 걸쭉해졌다. 거기에 갑각류를 넣으니 푸른 등껍질이 열을 받아 주황빛으로 변했다 — 가재와 같은 원리다. 냄새도 비슷했다. 짭조름하진 않았지만 민물 특유의 구수한 향이 올라왔다. 선반에서 소금 비슷한 결정질 가루를 찾아 코끝에 대 봤다. 짠맛. 한 꼬집 넣었다.
마지막에 달걀을 깨뜨려 넣고 나무 국자로 저으니, 노란 알끈이 국물 속에서 실처럼 풀어졌다.
‘……뭐, 최소한 독은 아니겠지.’
소영은 나무 국자로 국물을 떠서 후후 불었다. 입에 넣자 — 맛있다고는 못 하겠지만, 뜨겁고, 부드럽고, 위장에 내려가는 느낌이 확실했다. 눈물이 날 뻔했다. 진짜 배가 고팠던 거다.
새끼 여우에게는 갑각류의 살을 발라냈다. 등껍질을 벗기고 안쪽의 부드러운 흰 살만 골라서 식을 때까지 기다린 후 건초 위에 놓아 주었다. 뿌리 조각도 잘게 찢어 옆에 두었다. 여우는 잡식성이긴 하지만, 이렇게 어린 개체에게 딱딱한 갑각류 껍질은 위험했다.
새끼 여우가 코를 벌름거리며 음식 냄새를 맡았다. 부목 낀 다리를 끌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움직이지 마. 내가 갖다 줄게.”
소영이 갑각류 살 한 점을 손바닥에 올려 여우의 코앞에 가져갔다. 잠시 망설이던 여우가 혀를 내밀어 핥았다. 한번, 두 번. 그리고는 입을 벌려 살점을 받아 물었다. 작은 이빨이 씹는 소리가 났다.
“……이상해. 근데 좋아.”
소영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
“이상한 건 나도 마찬가지야.”
한 점, 두 점. 여우가 먹는 속도가 조금씩 빨라졌다. 세 번째 살점을 받아먹을 때쯤엔 소영의 손가락까지 함께 핥았는데, 거칠고 젖은 혀의 감촉이 간지러웠다. 뿌리 조각은 냄새를 맡더니 고개를 돌렸다. 역시 육식 성향이 강한 개체다.
소영은 남은 국물을 후루룩 마시면서, 여우가 갑각류 살을 다 먹고 입 주변을 혀로 닦는 걸 지켜봤다. 배가 차니 여우의 눈꺼풀이 스르르 내려앉기 시작했다. 통증과 긴장으로 지쳐 있었을 터였다.
“자도 돼. 여기 안전해.”
안전한지 사실 소영도 몰랐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순간 —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는 걸 알았다.
새끼 여우가 소영의 허벅지 옆으로 몸을 기울여 왔다. 부목 낀 다리를 조심스럽게 빼고 나머지 세 다리를 몸 아래 접었다. 솜털 같은 꼬리가 코를 덮었다. 몇 번 숨을 깊이 들이쉬더니, 금빛 눈이 감겼다.
소영은 여우의 옆구리가 고르게 오르내리는 걸 확인했다. 호흡수 분당 스물두 번 정도. 정상 범위 안이다.
그제야 소영도 등을 벽에 기댔다. 화덕의 불이 주황빛으로 타들어가며 오두막 안을 따뜻하게 데우고 있었다. 배가 부르고 몸이 따뜻하니 긴장이 풀렸고, 풀리니 다시 현실이 밀려왔다 — 이곳이 어디인지, 돌아갈 수 있는지, 이 숲에 뭐가 살고 있는지.
하지만 지금은 그것들을 전부 내일로 미뤘다.
옆구리에 기대어 잠든 새끼 여우의 체온이 청바지를 통해 전해져 왔다. 작고, 확실하고, 살아 있는 온기.
소영은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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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재 진료소 상태 요약 |
-3-
새의 울음소리에 잠이 깼다.
물방울을 굴리는 듯한 그 낯선 선율이 이제는 조금 덜 낯설었다. 소영은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등이 뻣뻣했다. 통나무 벽에 기대어 자는 건 인간의 척추가 감당할 일이 아니었다. 목을 돌리자 뼈가 우두둑 소리를 냈고, 그제야 옆구리의 온기가 사라져 있다는 걸 알아챘다.
새끼 여우가 문 쪽에 바짝 엎드려 있었다.
부목을 댄 앞다리를 어색하게 접은 채, 코를 반쯤 열린 문틈에 밀어 넣고 있었다. 귀가 앞으로 쫑긋 세워져 방향을 잡고 — 갑자기 온몸이 팽팽해졌다. 등줄기를 따라 털이 미세하게 곤두섰다.
소영이 입을 열기 전에, 새끼 여우에게서 감정이 흘러왔다. 이번엔 말이 아니라 순수한 감정 덩어리였다. 기쁨, 그리움, 안도, 그것들이 한꺼번에 뒤엉킨 뜨거운 것.
“엄마!”
새끼 여우가 문을 코로 밀어젖히려 버둥거렸다. 세 다리로는 힘이 부족했고, 부목이 문턱에 걸려 끼었다. 소영이 얼른 다가가 문을 열어 주자, 새끼 여우가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섰다.
오두막 앞 공터에, 여우 한 마리가 서 있었다.
새끼보다 서너 배는 큰 체구. 등에서 꼬리까지 이어지는 붉은 털이 아침 햇살을 받아 구릿빛으로 빛났다. 하지만 소영의 시선이 먼저 간 곳은 털 색이 아니었다 — 여우의 자세였다. 네 다리를 땅에 단단히 박고, 무게중심을 낮추고, 윗입술이 미세하게 말려 올라가 송곳니 끝이 드러나 있었다. 눈이 소영을 관통했다. 호박색 홍채 안에 검은 동공이 수직으로 좁아져, 위협을 평가하고 있었다.
‘어미 여우.’
소영은 문틈에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수의대에서 배운 것 중 하나 — 야생 어미 앞에서의 첫 번째 규칙은 ‘가만히 있을 것’. 시선을 정면으로 맞추지 않고 살짝 아래로 내렸다. 위협이 아니라는 신호.
새끼 여우가 세 다리로 절뚝이며 어미에게 다가갔다. 어미 여우의 자세가 흔들렸다 — 경계와 모성 사이에서. 새끼가 코를 어미의 턱 아래에 부비자, 어미 여우가 고개를 숙여 새끼의 머리를 핥기 시작했다. 거칠게, 빠르게, 확인하듯이. 부목을 댄 다리 주변을 냄새 맡고, 옆구리의 연고 자국을 킁킁거렸다.
“엄마, 엄마, 이 사람이 다리 고쳐줬어. 아픈 거 닦아주고, 딱딱한 거 대줘서 이제 덜 아파.”
새끼 여우의 감각이 어미에게 향했지만, 소영에게도 함께 흘러들었다. 어미 여우가 새끼의 부목을 코로 조심스럽게 건드렸다. 냄새를 맡고 — 사람 냄새, 소독액 냄새, 허브 연고 냄새 — 그리고 다시 소영을 봤다.
이번에는 송곳니가 보이지 않았다.
“네가 이 아이를 치료했느냐.”
어미 여우의 감각은 새끼와 달랐다. 더 또렷하고, 구조가 있었다. 문장에 가까운 의미 전달. 목소리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낮고 단단한 울림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소영은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천천히. 손바닥을 보이며.
“네. 어제 문 앞에 쓰러져 있었어요. 앞다리가 부러지고 옆구리에 긁힌 상처가 있어서, 할 수 있는 만큼 처치했습니다.”
존댓말이 나온 건 무의식이었다. 어미의 눈에 담긴 무게가 그걸 요구하는 것 같았다.
어미 여우가 잠시 소영을 바라봤다. 위협을 재는 시선이 아니라, 읽으려는 시선이었다. 그 몇 초가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미 여우의 꼬리가 — 살짝, 아주 살짝 — 내려갔다. 경계 해제의 신호.
“……고맙다.”
그 감각 안에는 무게가 실려 있었다. 야생 동물이 감사를 표현하는 일은 드물다. 더군다나 사람에게. 어미 여우가 새끼 옆에 몸을 낮추고 앉았다. 새끼가 어미의 옆구리에 파고들어 코를 묻었다. 어제 소영의 머릿속에 흘러들었던 이미지 — 어미의 따뜻한 배에 얼굴을 파묻던 기억 — 그 원본을 보는 셈이었다.
“다리가 나으려면 보름은 걸릴 거예요. 그동안은 부목을 풀면 안 됩니다.”
소영이 오두막 계단 — 통나무 토막 — 에 앉으며 말했다. 어미 여우의 귀가 소영 쪽으로 돌아갔다.
“저기…… 혹시 이 아이가 어쩌다 다쳤는지 아세요?”
잠깐의 침묵 뒤에, 어미 여우가 새끼의 등을 혀로 쓸어넘기며 대답했다.
“개울 너머 동쪽 비탈에서 놀고 있었다. 비가 온 뒤라 흙이 물렀는데, 이 녀석이 거길 밟은 거지.”
어미 여우의 감각에 이미지가 섞여 들었다. 진흙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 발밑이 사라지는 순간의 공포, 경사를 따라 구르는 몸. 그리고 튀어나온 나무뿌리에 옆구리가 긁히고, 바위에 앞다리가 꺾이는 — 충격.
“소리를 듣고 달려갔을 때는 이미 비탈 아래로 떨어진 뒤였다. 물어서 옮기려 했지만 다리를 건드리면 이 아이가 비명을 질렀고…… 결국 놓쳤다. 냄새를 따라 여기까지 왔는데.”
어미의 감각 속에 죄책감이 스며 있었다. 미처 막지 못했다는. 소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잘 처치했으니까요. 골절 자체는 심하지 않아서, 부목만 잘 유지하면 붙을 겁니다.”
새끼 여우가 어미 품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이 사람 밥도 줬어! 이상한 거였는데 맛있었어!”
어미 여우의 귀가 살짝 뒤로 젖혀졌다 — 의아한 표정이었을까. 소영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냥 개울에서 잡은 걸 끓인 건데……”
아침 공기가 차갑고 깨끗했다. 소영은 숲을 둘러봤다. 어제의 공포가 약간 가시자, 그 자리를 궁금증이 채우고 있었다.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어미 여우가 시선으로 허락했다.
“저는…… 이곳에 처음 왔어요. 여기가 어떤 곳인지 전혀 모릅니다. 이 숲은 어디이고, 주변에 누가 사는지……”
어미 여우가 코를 들어 바람 냄새를 맡았다.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각각에서 다른 것을 읽어내는 듯했다.
“이 숲은 '경계림’이라 불린다.”
어미 여우가 몸을 일으켜 앉았다. 꼬리가 새끼의 등을 감싸고 있었다.
“숲 동쪽 끝을 넘으면 인간들의 땅이 나온다. 마을이 있고, 그 너머에 더 큰 인간 무리가 모여 사는 곳도 있다고 들었다.”
소영의 심장이 뛰었다. 인간. 사람이 사는 곳이 있다.
“숲 서쪽 끝을 넘으면 긴 귀를 가진 것들의 땅이다. 너희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냄새가 다르고, 나무를 베지 않으며, 발소리를 내지 않는 것들.”
“엘프……?”
소영이 중얼거렸다. 어미 여우의 귀가 그 단어에 반응하지 않았다 — 여우들은 그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양쪽 모두 이 숲 깊숙이는 들어오지 않는다.”
어미 여우가 말을 이었다. 감각 속에 오래된 관습의 무게가 느껴졌다. 할머니 여우에게서, 그 할머니 여우에게서 전해 들은 것.
“인간들은 숲 가장자리에서 나무를 베고 열매를 따지만, 안쪽까지는 오지 않는다. 긴 귀 족도 마찬가지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서로 약속한 건지, 아니면 숲 자체를 두려워하는 건지. 하지만 그 덕에 우리가 여기서 살 수 있다.”
어미 여우가 코끝으로 주변 공기를 가리켰다. 새소리, 벌레 소리, 개울 소리. 포식자의 발소리도, 도끼질 소리도, 화살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도 없는.
“다람쥐도, 사슴도, 올빼미도, 우리도. 아무도 쫓기지 않고 산다. 이 숲 안에서는.”
소영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머릿속에서 지도를 그려 보았다. 동쪽에 인간 마을, 서쪽에 엘프, 그 사이에 양쪽이 암묵적으로 손대지 않는 숲. 그리고 그 숲 안쪽에 자기가 눈을 뜬 이 오두막.
“그러면…… 이 오두막은요? 누가 지은 건지 아세요?”
어미 여우가 한쪽 귀를 돌렸다.
“오래전부터 있었다. 내 어미의 어미 시절에도 비어 있었다고 들었다. 안에서 사람 냄새가 나긴 했지만, 아주 오래된 냄새라 이미 숲 냄새와 섞여 있었지.”
소영은 오두막을 돌아봤다. 선반의 약병들, 화덕, 가죽 경첩의 문. 누군가 이 숲에서 살았었다. 약초를 다루던 누군가. 그리고 떠나고 — 혹은 사라지고 — 오랜 세월이 지난 것.
새끼 여우가 어미의 꼬리 밑에서 빠져나와 소영의 발 쪽으로 기어왔다. 부목 낀 다리를 질질 끌면서도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엄마, 이 사람 착해. 여기 있어도 돼?”
어미 여우가 새끼를 내려다보고, 다시 소영을 봤다. 호박색 눈에 감정을 읽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적대감은 아니었다. 오래 사귄 이웃을 보는 눈도 아니었지만, 적어도 — 자기 새끼를 살려준 존재에 대한, 조심스럽지만 진실한 용인.
“네 다리가 나을 때까지는 돌봐줄 이가 필요하겠지.”
어미 여우가 일어섰다. 꼬리로 새끼의 머리를 한번 쓸고, 소영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매일 올 테니. 이 아이를 부탁한다.”
그리고 몸을 돌려 덤불 사이로 사라졌다. 붉은 등이 초록 잎 사이에서 점점 작아지다가, 숲이 삼켰다. 발소리 하나 남기지 않고.
소영은 자기 발치에서 꼬리를 흔드는 새끼 여우를 내려다봤다.
“……자. 그러면.”
아침 이슬이 맺힌 풀잎 위로, 이름 모를 새의 물방울 노래가 다시 울려 퍼졌다.
소영은 그 노래를 들으며, 생전 처음으로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조금은 보이기 시작한다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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