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이세계 숲속 동물병원 (3화: 숲속 동물병원의 개업, 그리고 상처 입은 오소리)

 -1-


진흙을 짓이기고 나뭇가지를 엮던 근육들이 한꺼번에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소영은 덜컹거리는 숨을 내쉬며 새로 깔아둔 건초 더미 위로 몸을 무너뜨렸다. 등허리에 닿는 마른 풀의 감촉은 거칠었지만, 차갑고 축축한 흙바닥과는 비교할 수 없는 형태의 지지력이었다. 척추를 따라 뭉쳐 있던 긴장이 스르르 풀리며 묵직한 통증이 밀려왔다. 손끝은 흙물과 풀물로 갈색과 녹색이 얼룩덜룩하게 배어 있었고, 손톱 밑에는 미처 씻어내지 못한 진흙 찌꺼기가 까맣게 굳어 있었다.


오두막 내부의 공기는 아침보다 한결 무거웠다. 해가 숲의 수관 너머로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반쯤 열린 문틈으로 들어오던 빛의 각도가 길고 붉게 늘어졌다. 틈새를 진흙으로 막은 덕분에 외풍은 줄었지만, 숲 특유의 서늘한 습기가 바닥에서부터 천천히 차오르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소영은 무릎을 가슴 쪽으로 끌어당기며 몸을 웅크렸다. 청바지의 거친 데님 천이 맨살에 스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문설주에 매달아 둔 풀 뭉치를 바라보았다. 잎 끝이 톱니 모양으로 갈라진, 야생 쑥을 닮은 식물. 바람이 불 때마다 희미하게 쌉쌀한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몸을 일으킬 힘조차 남지 않았지만, 소영은 팔을 뻗어 선반 위에 올려둔 박하 향이 나는 허브 잎 하나를 집어 들었다. 손가락 사이에서 잎을 비비자, 알싸하고 시원한 냄새가 터져 나왔다.


“이게 진짜 소독 작용을 해 줘야 할 텐데.”


건조한 입술 사이로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지구의 식물과 겉모습과 향이 비슷하다고 해서 화학적 성분까지 동일하다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기댈 수 있는 것은 6년간 활자로 배운 지식과 불완전한 오감뿐이었다. 소영은 으깨진 잎사귀의 녹색 즙이 손가락 지문에 스며드는 것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눈꺼풀이 납덩이처럼 무거워졌다.


새끼 여우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부목을 댄 다리를 조심스럽게 끌며 소영의 허벅지 옆으로 몸을 기댔다. 솜털이 보송한 붉은 털에서 햇볕에 마른 흙냄새와 미세한 짐승의 젖 냄새가 났다. 여우는 코를 자신의 꼬리에 파묻은 채 몇 번 몸을 뒤척이더니, 이내 규칙적인 호흡을 시작했다. 옆구리를 타고 전해지는 작은 심장의 박동과 온기가, 차갑게 식어가는 소영의 체온을 조금이나마 덥혀주었다.


화덕에 남아 있던 숯불이 옅은 재를 뒤집어쓰며 주황색 빛을 명멸했다. 빛이 줄어들자 숲의 어둠이 오두막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이름 모를 밤벌레들의 울음소리가 시작되었고, 아주 멀리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길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영의 몸이 반사적으로 움찔했지만, 피로가 공포를 짓눌렀다. 그녀는 여우의 등 위로 조심스럽게 손을 얹은 채 까무러치듯 깊은 수면에 빠져들었다. 꿈조차 꾸지 않는, 검고 무거운 잠이었다.


얼굴에 닿는 차가운 공기에 눈을 떴을 때, 숲은 짙은 푸른빛과 회색이 섞인 여명에 잠겨 있었다.


관절 마디마디가 녹슨 경첩처럼 뻣뻣했다. 소영은 신음을 삼키며 몸을 일으켰다. 건초가 눌린 자국대로 어깨가 결려왔다. 밤새 기온이 꽤 떨어졌는지 입김이 옅은 하얀 연기로 흩어졌다. 그녀의 옆에 웅크리고 있던 새끼 여우는 이미 깨어 있었다. 여우의 귀가 문 쪽을 향해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고, 꼬리가 바닥을 가볍게 두드렸다.


소영이 굳은 다리를 이끌고 문으로 다가가 묶어둔 넝쿨을 풀었다. 끼익, 하는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문이 열리자, 축축한 이슬 냄새가 훅 밀려왔다. 오두막 앞 공터의 무릎 높이까지 자란 풀들은 은빛 이슬을 매달고 잔뜩 휘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풀밭의 끝, 어제 덤불이 갈라졌던 그 자리에 어미 여우가 서 있었다.


아침의 희미한 빛 속에서도 어미 여우의 붉은 털은 윤기가 흘렀다. 네 다리로 땅을 딛고 선 자세는 어제보다 훨씬 이완되어 있었으나, 주변의 미세한 소리 하나하나를 빨아들이는 듯한 야생의 긴장감은 여전했다. 어미 여우의 입에는 무언가가 물려 있었다.


어미 여우가 소리 없이 다가왔다. 젖은 풀잎이 스치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 걸음이었다. 소영과 서너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멈춰 선 어미 여우는 입에 물고 있던 것을 흙바닥에 툭 떨어뜨렸다.


검붉은 피 냄새가 아침 공기를 갈랐다.


소영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그건 토끼와 비슷한 체형을 가진 작은 짐승의 사체였다. 하지만 귀가 세 개였고, 뒷다리의 근육이 기형적일 정도로 발달해 있었다. 목덜미에는 정확히 급소를 물어뜯은 이빨 자국이 깊게 파여 있었고, 굳지 않은 피가 흙을 적시고 있었다. 그 옆에는 주먹만 한 크기의 딱딱하고 푸른 껍질을 가진 열매 몇 개가 흩어졌다.


“네가 먹을 만한 것을 조금 주워 왔다.”


어제와 같은, 낮고 묵직한 진동이 머릿속에 직접 울려 퍼졌다. 음성이 아니었다. '피가 식기 전에 가져온 사냥감’이라는 명확한 사실과 '호의’라는 개념이 뭉뚱그려져 감각으로 꽂히는 느낌이었다.


소영의 위장이 반사적으로 수축했다. 날고기. 그것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괴한 해부학적 구조를 가진 생물. 서울의 수의대 해부학 실습실에서 맡았던 포르말린 냄새와는 완전히 다른, 뜨겁고 비릿한 생명의 끝자리 냄새였다. 하지만 이내 배 속에서 날카로운 꼬르륵 소리가 울렸다. 그녀는 마른침을 삼켰다. 불이 있고, 냄비가 있다. 익히면 단백질이다.


“…고맙습니다. 정말 잘 먹을게요.”


소영은 무릎을 굽히고 앉아 사체와 열매를 끌어당겼다. 피가 손끝에 묻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어미 여우의 호박색 눈동자가 소영의 움직임을 가만히 응시했다. 거절하지 않고 먹이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어미의 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호를 그리며 흔들렸다.


새끼 여우가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며 문턱을 넘어왔다. 부목을 댄 다리를 절뚝거리며 다가와 어미의 주둥이에 자신의 코를 비볐다.


“엄마, 엄마. 나 덜 아파. 여기 사람, 내 다리에 잎사귀 묶어줬어.”


어미 여우가 고개를 숙여 새끼의 머리부터 등까지 길게 핥았다. 뻣뻣한 혀가 털을 빗어 넘기는 마찰음이 들렸다. 소영은 곁으로 다가가 새끼 여우의 앞다리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상처 부위가 덧나지 않는지 계속 확인하고 있어요.”


소영은 찢어진 블라우스 천을 조심스럽게 풀고, 상처를 덮고 있던 넓은 잎사귀를 살짝 들춰냈다. 어미 여우가 코를 들이밀어 상처 부위의 냄새를 맡았다. 짐승의 더운 콧김이 소영의 손가락에 닿았다. 녹색 허브 연고가 스며든 찰과상은 붉은 기가 많이 가라앉았고, 노란 진물 대신 얇고 건조한 딱지가 앉기 시작한 상태였다. 부러진 뼈를 지지하는 나뭇가지 부목도 원래의 각도를 단단히 유지하고 있었다.


“염증의 냄새가 나지 않는군.”


어미 여우의 감각이 소영에게 닿았다. 거기에는 명백한 안도와, 눈앞의 이 기묘한 털 없는 생물에 대한 한층 짙어진 신뢰가 섞여 있었다.


“이 잎사귀와 어제 발라둔 약 덕분이에요. 다리가 완전히 붙을 때까지는 뛰지 못하게 막아야 하는데, 어린 애라 쉽지가 않네요.”


소영은 다시 잎사귀를 덮고 천을 단단히 묶어 매듭을 지었다. 그 일련의 과정—풀고, 확인하고, 다시 감싸는 행위—을 어미 여우는 눈을 깜빡이지 않고 지켜보았다. 자신의 새끼를 만지는 이방인의 손길을 완전히 허락한 태도였다.


어미 여우가 한 걸음 물러섰다.


“햇살이 가장 뜨거울 때, 물을 구하러 짐승들이 개울로 모여든다. 사냥을 하는 자들도 그때를 노리지. 오두막 밖으로 나갈 거라면 그 시간은 피하는 것이 좋을 거다.”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이 숲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실질적인 생존 정보였다. 소영은 사냥감의 피가 묻은 손을 무릎에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할게요.”


어미 여우는 다시 한번 새끼의 정수리를 핥아주고는, 몸을 돌려 안개 낀 숲을 향해 뛰어갔다. 붉은 꼬리가 양치식물 잎사귀들 사이로 몇 번 번뜩이는가 싶더니, 이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소영은 바닥에 놓인 세 귀 달린 토끼의 사체를 내려다보았다. 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빼내야 한다. 칼이 없다면 날카로운 돌조각이라도 찾아야 했다. 현실적인 생존의 과제가 그녀의 어깨를 짓누르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그녀의 감각을 날카롭게 깨우고 있었다.


🏥 현재 진료소 상태 요약



-2-


소영은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시선은 토끼 사체를 피한 채 선반의 가장 어두운 구석, 어제 미처 꼼꼼히 닦아내지 못한 먼지투성이 안쪽으로 향했다. 손을 더듬자 딱딱하고 차가운 질감이 닿았다. 끄집어내자 나무 손잡이가 낡아빠진, 그러나 날의 이가 크게 빠지지 않은 무쇠 식칼이 딸려 나왔다. 그 옆에는 가죽 주머니가 두 개 있었다. 하나를 열자 어제 개울가에서 맛보았던 것과 같은 굵은 소금 결정이, 다른 하나에서는 매캐하고 알싸한 후추 비슷한 향신료 가루가 들어 있었다.


“…다행이다.”


소영은 식칼과 가죽 주머니, 냄비를 챙겨 들고 밖으로 나왔다. 바닥에 놓인 세 귀 토끼의 뒷덜미를 왼손으로 움켜쥐었다. 사체는 아직 미지근했다. 피비린내가 훅 끼쳤다.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고 개울가로 걸음을 옮겼다.


물가에 쪼그려 앉았다. 차가운 개울물에 식칼을 한 번 헹구고, 토끼의 배 쪽을 하늘로 향하게 눕혔다. 수의대 해부학 실습실의 차가운 스테인리스 테이블과 소독약 냄새 대신, 이끼 낀 젖은 바위와 생흙 냄새가 진동했다.


“수의대 실습 때보다 더 떨리네.”


소영이 중얼거렸다. 식칼의 끝을 토끼의 턱 아래쪽 가죽에 찔러 넣었다.


“배가 고프니 어쩔 수 없지.”


가죽을 가르고, 근막을 칼끝으로 조심스럽게 분리했다. 두꺼운 뒷다리 근육을 따라 껍질을 벗겨내는 작업은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들어갔다. 손가락 마디가 뻐근해졌고, 손톱 밑으로 붉은 피가 스며들었다. 내장을 쏟아낼 때는 숨을 참았다. 푸르스름한 막에 둘러싸인 장기들을 개울 하류 쪽으로 밀어 버리고, 남은 고기 덩어리를 차가운 물에 박박 씻어냈다. 핏물이 씻겨 내려가며 붉은 선홍색 고깃결이 드러났다.


고기를 큼지막하게 토막 내어 냄비에 담았다.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져 감각이 둔해져 있었다.


오두막 앞 화덕으로 돌아와 불씨를 살렸다. 어제 주워둔 마른 잔가지를 밀어 넣고 부싯돌을 쳤다. 몇 번의 불꽃이 튀고 마른 이끼에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이내 주황색 불길이 솟구쳤다. 냄비에 개울물을 붓고 끓기 시작할 때쯤, 소영은 가죽 주머니의 소금과 향신료 가루를 조금씩 뿌려 넣었다.


어미 여우가 놓고 간 푸른 열매도 칼로 반을 갈라 넣었다. 씨앗은 없고 단단한 과육뿐이었다.


물이 끓어오르며 피비린내는 점차 고소하고 짭짤한 고깃국 냄새로 변해갔다. 화덕 주변에 엎드려 있던 새끼 여우가 코를 킁킁거리며 다가왔다.


“냄새 좋아. 배고파.”

“조금만 기다려. 다 익어야 돼.”


국물이 반쯤 졸아들었을 때, 소영은 나무 국자로 고기 한 점을 건져 올렸다. 후후 불어 입에 넣었다. 야생 동물의 고기라 질길 줄 알았지만, 향신료와 과일이 연육 작용을 했는지 생각보다 부드럽게 씹혔다. 짭조름한 육즙이 빈 위장으로 쏟아져 내리자, 몸속의 세포들이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는 감각이 들었다.


소영은 새끼 여우를 위해 덜 뜨거운 가장자리 쪽의 고기를 건져 나뭇잎 위에 올려주었다. 여우는 날고기를 더 선호할 법도 한데, 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국물의 냄새에 홀렸는지 허겁지겁 고기를 찢어 삼켰다.


냄비가 바닥을 드러낼 무렵, 소영은 부른 배를 안고 화덕 옆에 기대앉았다. 손끝과 발끝까지 온기가 돌았다. 생존의 첫 번째 관문을 넘은 셈이다.


그녀의 시선이 오두막 앞의 텅 빈 흙바닥으로 향했다. 어미 여우가 이곳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 아마도 오래전 이 오두막에 살았던 누군가가 남긴 '안전하다’는 흔적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도 흔적을 남겨야 했다.


“간판을 달아야겠어.”


소영은 오두막 뒤편에서 널찍하고 평평한 나무판자 하나를 찾아냈다. 과거에 문짝의 일부였거나 선반이었을 법한 조각이었다. 화덕에서 검게 타다 만 굵은 숯덩이를 하나 집어 들었다.


판자 표면의 먼지를 손으로 훔쳐내고, 숯으로 선을 긋기 시작했다.


한글이나 영어를 써봐야 이 숲의 동물들이 읽을 리 만무했다. 소영은 기호를 택했다. 중앙에 커다란 동물의 발바닥 자국을 그리고, 그 주변을 감싸는 둥근 잎사귀 두 개를 그렸다. 상처를 덮고 치유한다는 직관적인 의미였다.


완성된 판자를 들고 오두막 앞 공터, 덤불이 갈라지는 입구 쪽에 섰다. 굵은 나뭇가지 하나를 땅에 깊게 박아 기둥을 세우고, 넝쿨줄기로 간판을 단단히 묶었다.


“동물병원. 첫 번째 지점 개업이네.”


소영은 손에 묻은 숯가루를 툭툭 털어냈다. 새끼 여우가 간판 밑으로 절뚝거리며 걸어와 냄새를 맡았다.


“나무 탄 냄새 나.”

“그게 우리 병원 냄새야.”


바람이 불어와 간판이 살짝 흔들렸다.


그때, 오두막 왼쪽, 햇살이 닿지 않는 빽빽한 고사리 군락 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불규칙하고, 무겁게 땅을 끄는 소리.


소영은 반사적으로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덜 마른 진흙이 묻은 나무 막대기를 움켜쥐었다. 새끼 여우도 털을 곤두세우고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낮게 으르렁거렸다.


양치식물의 커다란 잎사귀가 천천히 양옆으로 벌어졌다.


회색빛의 뻣뻣한 털, 땅딸막한 다리. 몸집은 중형견만 한 오소리였다. 하지만 주둥이에는 날카로운 뿔이 아주 작게 돋아 있었고, 오른쪽 눈 위부터 귀 아래까지 깊게 베인 상처가 선명했다. 피는 멈췄지만 상처 주변이 붉게 부어오르고 누런 진물이 엉겨 붙어 있었다.


오소리는 소영과 새끼 여우를 번갈아 보더니, 낡은 간판 기둥 앞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거친 숨을 내몰아쉬며 바닥에 턱을 댔다.


적대감은 없었다. 오직 지독한 고통과 피로만이 그 동물의 주변을 감돌고 있었다.


🏥 현재 진료소 상태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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