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이세계 숲속 동물병원 (2화: 숲속 동물병원의 첫 단장)
-1-
붉은 털 뭉치가 덤불 속으로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숲은 고요했다. 나뭇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만 파도처럼 밀려왔다 빠져나갔다. 소영은 그 자리에 잠시 서 있었다. 발밑의 흙은 축축했고, 아침 공기는 폐부 깊숙한 곳까지 시리게 파고들었다.
돌아갈 곳이 없다면, 이곳이 돌아갈 곳이 되어야 했다.
소영은 몸을 돌려 오두막을 마주했다. 낡은 통나무 벽, 이끼 낀 지붕, 삐걱거리는 문짝. 낭만적으로 보면 숲속의 은신처였지만, 위생학적 관점에서 보면 거대한 세균 배양 접시나 다름없었다.
“…일단, 쓸고 닦자.”
혼잣말을 뱉자 의지가 조금 단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소영은 오두막 주변을 돌며 굵직한 나뭇가지를 주워 모았다. 잎이 무성하게 달린, 빗자루 대용으로 쓸 만한 것들이다. 칡넝쿨처럼 질긴 줄기를 찾아내 가지들을 단단히 묶었다. 손바닥이 거친 나무껍질에 쓸려 따끔거렸지만 무시했다.
오두막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매캐한 냄새가 났다. 어젯밤 피웠던 화덕의 재 냄새와, 오랫동안 묵은 먼지 냄새. 소영은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돌멩이로 고정했다.
빗자루질을 시작했다.
스삭, 스삭.
마른 흙바닥을 쓸 때마다 희뿌연 먼지가 피어올랐다. 거미줄이 엉킨 구석을 쳐내자 검은 먼지 덩어리가 툭 떨어졌다.
“에취!”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새끼 여우가 재채기를 했다. 작은 몸이 펄쩍 튀어 올랐다가 다시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부목을 댄 다리가 바닥에 닿지 않도록 용케 균형을 잡는 모습이었다.
“뭐 해? 뭐 해? 먼지 먹어?”
새끼 여우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꼬리가 바닥을 탁탁 쳤다. 소영은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으며 손으로 코와 입을 가렸다.
“아니, 먼지 내보내는 거야. 너도 밖으로 나가 있어. 여기 있으면 코 아파.”
“싫어. 여기 있을래. 엄마가 여기 있으라고 했어.”
여우는 고집스레 제자리를 지켰다. 대신 코를 앞발 사이에 파묻고 눈만 내놓은 채 소영의 빗자루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빗자루가 움직일 때마다 금빛 눈동자가 왼쪽, 오른쪽으로 굴러갔다. 사냥감의 움직임을 쫓는 것처럼.
바닥의 흙먼지를 문 밖으로 밀어내는 데만 삼십 분이 걸렸다. 다음은 선반이었다.
소영은 선반 앞에 섰다. 어제는 급해서 대충 훑어봤지만, 이제는 분류가 필요했다. 유리병들은 겉면에 뽀얗게 먼지가 앉아 내용물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낡은 블라우스 소매로 — 이제는 거의 걸레가 된 — 병 하나하나를 닦아냈다.
첫 번째 병. 갈색 가루. 뚜껑을 열자 흙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확 올라왔다.
“이건 폐기.”
소영은 병을 문 밖 멀리 던져버릴 생각으로 한쪽에 치워뒀다.
두 번째 병. 말린 잎. 짙은 녹색이 여전히 살아 있었다.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았다. 코가 뻥 뚫리는 박하 향.
“진정, 혹은 소화제 계열.”
기억 속의 허브 도감과 대조해 보려 애썼지만, 지구의 박하와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잎맥이 더 굵고 톱니 모양이 날카로웠다. 일단 '박하 유사품’으로 분류해 오른쪽 끝에 놓았다.
세 번째 병. 투명한 액체. 찰랑거리는 점도가 물보다는 끈적했다. 냄새는… 무향. 손가락 끝에 살짝 찍어 혀끝에 댔다.
“으.”
쓰다. 혀가 마비되는 듯한 아린 맛. 독초 추출물이거나, 강력한 마취 성분일 수도 있다. 위험물. 가장 높은 선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올렸다.
새끼 여우가 절뚝이며 다가왔다. 소영의 다리에 머리를 부비며 꼬리로 종아리를 감았다.
“나도 볼래. 냄새 맡을래.”
“안 돼. 이건 위험해.”
소영이 단호하게 말하며 병을 높이 올리자, 여우가 낑낑거리는 소리를 냈다.
“치사해. 나 코 좋은데.”
“코가 좋으니까 더 안 되는 거야. 이거 냄새 맡으면 코 삐뚤어질지도 몰라.”
소영은 빈 병 몇 개를 골라냈다. 내용물이 말라붙어 굳어버린 것들은 돌로 깨서 내용물을 버리고, 병만 챙겼다. 개울가에 가서 씻어오면 쓸 만할 것이다.
선반 정리가 끝나자 오두막 안의 공기가 한결 정돈된 느낌이었다. 약병들은 종류별로 — 가루약, 건초, 액체, 빈 병 — 키 순서대로 늘어서 있었다. 변변찮은 재고였지만, 이렇게 줄을 세워 놓으니 제법 약국 같은 꼴을 갖췄다.
“자, 이제 밖으로 나가자.”
소영은 빈 병 두 개와 냄비를 챙겨 들었다. 새끼 여우가 기다렸다는 듯 먼저 문 쪽으로 깡충 뛰었다가, 아픈 다리 때문에 비틀거렸다.
“조심하라니까.”
개울가는 오두막 안보다 밝았다. 햇살이 수면 위에서 부서져 반짝였다. 소영은 냄비에 물을 가득 담고, 모래를 한 줌 퍼서 냄비 안쪽을 문질렀다. 수세미가 없으니 고운 모래가 연마제 역할을 해야 했다. 차가운 물에 손이 금세 붉어졌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동안 새끼 여우는 개울가 풀밭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었다. 물 위를 스치듯 날아가는 잠자리를 눈으로 쫓다가, 가끔 앞발을 허공에 휘저었다.
“잡고 싶어.”
“다리 나으면 잡아. 지금은 어림도 없어.”
소영은 씻은 냄비와 병을 햇볕이 잘 드는 바위에 뒤집어 말렸다. 자외선 소독. 완벽하진 않아도 최선이었다.
그리고 다시 숲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번 목표는 식재료가 아니라 '재료’였다.
어제 봐두었던 오두막 뒤편의 음지 식물 군락. 소영은 축축한 흙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넓은 잎을 가진 양치식물들이 보였다. 잎 표면이 왁스칠을 한 듯 매끄럽고 도톰한 잎.
‘이거, 으깨면 즙이 많이 나올 것 같은데.’
잎 하나를 따서 냄새를 맡았다. 풀 비린내 속에 미세한 알싸함이 섞여 있었다. 잎을 반으로 접어 비비자 끈적한 진액이 배어 나왔다. 상처 부위를 덮거나, 지혈용으로 쓸 수 있을지 모른다. 일단 다섯 장을 채취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자, 나무뿌리 사이에서 하얀 버섯들이 자라난 게 보였다. 갓이 둥글고 표면에 점박이 무늬가 없는, 깨끗한 흰색. 독버섯일 확률은 반반. 소영은 지나쳤다. 모르는 건 건드리지 않는다.
대신 그 옆에 자라난 잡초 무더기에서 익숙한 모양을 발견했다. 잎이 톱니처럼 갈라져 있고, 뿌리 쪽이 붉은색을 띠는 풀.
“쑥…?”
비슷했다. 잎을 따서 비비자 특유의 쌉쌀하고 향긋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혈과 소독에 효과가 있는 식물. 이게 이 세계에도 존재한다면, 혹은 비슷한 성분을 가졌다면 대박이다. 소영은 뿌리가 다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흙을 파내어 쑥 한 줌을 캐냈다.
오두막으로 돌아오는 길, 소영의 품에는 쑥 비슷한 풀 한 뭉치와 넓은 잎사귀, 그리고 땔감으로 쓸 마른 가지들이 안겨 있었다.
새끼 여우가 쪼르르 따라오며 소영의 발뒤꿈치를 코로 톡톡 건드렸다.
“풀 냄새 나. 맛없는 냄새.”
“약 될 거야. 쓴 게 몸에 좋은 법이거든.”
다시 오두막. 소영은 화덕의 재를 걷어냈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안쪽 재는 남겨두고, 차갑게 식은 겉 재만 퍼내어 밖으로 버렸다. 바닥에 흩어진 검댕을 젖은 잎사귀로 닦아내자, 화덕의 돌들이 본래의 회색 빛깔을 드러냈다.
해가 중천에 떠올랐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블라우스는 이미 흙투성이가 되었고, 청바지 무릎 부분은 풀물이 들어 초록색으로 얼룩덜룩했다. 하지만 소영은 허리를 펴고 오두막 내부를 둘러봤다.
아까와는 달랐다.
바닥은 비록 흙바닥일지언정 쓰레기는 없었다. 선반의 약병들은 깨끗하게 닦여 열을 맞춰 서 있었고, 화덕은 불을 피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햇볕에 말린 냄비가 입구 쪽에서 반짝였다. 채취해 온 쑥은 끈으로 묶어 문설주에 매달아 두었다. 바람에 마르면서 향긋한 냄새를 퍼뜨릴 것이다.
아직 병원이라기엔 초라했다. 침대도 없고, 수술 도구도 없고, 조명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버려진 폐가는 아니었다. 누군가가 관리하고, 살아가고, 생명을 돌보는 공간의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소영은 땀을 닦으며 선반 가장자리를 손으로 짚었다.
“일단 여기를 치료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지.”
그 말은 새끼 여우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고, 이 낯선 세계에 던지는 선전포고이기도 했다. 나는 여기서 살아남을 거라고. 내 방식대로.
새끼 여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소영을 올려다봤다.
“치료? 아픈 거 없애주는 거?”
“응. 너처럼 아픈 애들, 낫게 해주는 곳.”
여우는 이해했다는 듯, 혹은 그저 소영의 목소리 톤이 마음에 든다는 듯 꼬리를 살랑거렸다.
“좋아. 누나가 하면 다 좋아.”
소영은 피식 웃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긴장이 풀리자 급격한 피로가 몰려왔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 전에, 우리 밥부터 먹어야겠다.”
새끼 여우의 귀가 번쩍 섰다.
“밥! 밥! 어제 먹은 거? 그 맛있는 거?”
“비슷한 거 찾아봐야지. 이번엔 좀 더 많이.”
소영은 다시 냄비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이번엔 발걸음이 아까보다 가벼웠다.
| 🏥 현재 진료소 상태 요약 |
-2-
소영은 개울가에 쪼그려 앉았다. 냄비 하나로는 요리와 청소를 동시에 감당할 수 없었다. 그녀는 평평하고 오목한 돌을 찾아 물가로 끌어왔다. 손끝이 젖은 흙을 파고들었다. 표면의 부슬부슬한 흙을 걷어내자, 물기를 잔뜩 머금은 찰진 진흙 층이 드러났다. 손톱 밑으로 차갑고 미끈거리는 감촉이 밀려들어왔다.
두 손으로 진흙을 퍼서 오목한 돌 위에 쌓았다. 흙냄새와 물이끼 냄새가 훅 끼쳤다. 지구의 흙과 다를 바 없는, 무겁고 습한 냄새. 마른 풀잎과 잔가지를 주워다 진흙 속에 섞어 넣었다. 접착력을 높이기 위한 본능적인 조치였다.
손바닥으로 진흙과 풀을 짓이기고 섞는 동안, 차가운 물기가 손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손의 온기 때문에 진흙이 점차 부드러워지며 반죽처럼 변해갔다. 이 정도면 벽에 바를 수 있겠다 싶을 무렵, 그녀는 흙투성이인 손등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쳤다. 이마에 축축한 흙자국이 남았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진흙 무더기를 담은 돌을 조심스럽게 들고 오두막으로 향했다. 새끼 여우는 여전히 문턱 근처에 엎드려 소영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고 있었다. 금빛 눈동자가 진흙 더미를 향해 깜빡였다.
“먹는 거?”
“아니. 집 고치는 거.”
소영은 오두막 안으로 들어서서, 통나무 사이의 벌어진 틈새들을 살폈다. 빛이 새어 들어오는 곳, 손을 댔을 때 서늘한 바람이 밀려오는 곳. 그녀는 손가락으로 진흙 반죽을 듬뿍 떠서 그 틈새에 밀어 넣었다. 거친 나무껍질의 질감이 진흙을 통해 전해졌다.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 표면을 평평하게 다듬었다.
하나의 틈을 메우고, 다음 틈으로 이동했다. 쪼그려 앉았다가 일어서기를 반복하자 허벅지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왔다. 바닥과 가까운 틈새에는 벌레들이 드나든 흔적이 있었고, 그곳을 꼼꼼하게 막아버렸다. 진흙이 마르면서 단단하게 굳어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겨울 오기 전에는 다 막아야 하는데.”
혼잣말처럼 튀어나온 음성이 좁은 오두막 안을 울렸다.
새끼 여우가 앞발을 모은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겨울이 뭐야?”
“음… 아주 추워지는 때. 눈이 오고, 먹을 게 없어지는 때.”
“아, 하얀 얼음 떨어지는 날. 엄마가 그땐 굴 속에서 자야 한댔어.”
소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흙을 마저 발랐다. 이 세계에도 계절의 순환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틈새를 다 메운 뒤, 그녀는 문으로 다가갔다. 가죽 경첩 하나가 반쯤 찢어져 문이 덜컹거리고 있었다. 어제 주워온 질긴 넝쿨줄기를 이용해 가죽과 나무 기둥 사이를 여러 번 동여맸다. 손가락 마디가 붉게 달아오를 정도로 세게 당겨 묶었다. 문을 열고 닫아보자, 아까보다 훨씬 묵직하고 안정적인 궤적을 그렸다.
“휴.”
흙 묻은 손을 개울가에 가서 대충 씻어내고, 이번에는 오두막 주변의 햇볕이 잘 드는 공터로 향했다. 무릎 높이까지 자란 건초들이 널려 있었다. 아침 이슬이 마르고 햇볕을 잔뜩 받아 바스락거리는 마른 풀들. 소영은 양팔을 벌려 건초를 한 아름 안아 들었다. 먼지와 마른 풀잎 부스러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오두막 안의 낡은 나무 침대 틀 위에, 기존의 퀴퀴한 풀들을 걷어내고 밖으로 버렸다. 그리고 방금 가져온 마른 건초를 두껍게 깔았다. 푹신하게 부풀어 오른 풀더미 위로 숲의 건조하고 따뜻한 향기가 퍼졌다. 바닥 구석에도 여우가 쉴 수 있도록 작은 풀더미를 만들었다.
모든 정비가 끝나자, 소영은 숨을 고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손바닥은 긁히고 흙투성이였고, 다리는 천근만근이었다. 하지만 오두막 안은 아침보다 한결 따뜻하고 꽉 찬 느낌이 들었다.
“자, 이제 네 차례야.”
소영이 새끼 여우를 향해 다가갔다. 여우는 꼬리를 바닥에 탁탁 치며 몸을 뒤척였다. 아침 내내 절뚝거리며 돌아다닌 탓에, 어제 블라우스 천으로 감아둔 붕대가 흙과 풀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부목으로 댄 나뭇가지도 원래 위치에서 약간 어긋나 보였다.
“이리 와 봐. 붕대 풀자.”
소영은 조심스럽게 여우의 앞다리를 잡았다. 털 아래로 느껴지는 체온은 정상 범위였다. 엉켜있는 천의 매듭을 살살 풀었다. 피가 굳어 천과 털이 눌어붙은 부분은 어제 개울가에서 떠온 깨끗한 물을 살짝 적셔 천천히 떼어냈다.
“어? 이제 안 따가워.”
붕대가 완전히 벗겨지자, 찰과상 부위가 드러났다. 어제 발라둔 녹색 허브 연고 덕분인지, 상처 주변의 붉은 기운이 가라앉고 얇은 딱지가 앉기 시작하고 있었다. 부러진 앞다리도 육안으로 보기에 심하게 붓지 않았다.
“많이 움직이면 뼈가 잘못 붙어. 명심해.”
소영은 어제 채취해 온 넓고 매끄러운 잎사귀들을 꺼냈다. 물에 씻어 말려둔 터라 표면이 서늘했다. 잎사귀로 상처 부위를 감싸고, 다시 깨끗한 부분의 천을 찢어 단단하게, 그러나 혈액 순환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의 압력으로 묶어주었다. 나뭇가지 부목도 원래 각도에 맞춰 다시 고정했다.
처치를 마친 소영이 손을 떼려 하자, 새끼 여우가 갑자기 소영의 손목에 턱을 비비적거렸다. 부목이 고정되자 긴장이 풀린 탓인지, 아니면 상처 주변의 딱지가 생기며 느껴지는 가려움 때문인지, 몸을 배배 꼬았다.
“간지러워. 긁어줘. 으으응, 거기 좋아.”
새끼 여우의 콧김이 손목에 닿았다. 소영은 피식 웃으며 손가락 끝으로 여우의 귀 뒤쪽과 목덜미의 촘촘한 털 사이를 살살 긁어주었다. 여우가 눈을 가늘게 뜨고 喉에서 기분 좋은 울림을 냈다. 고양이의 골골송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거칠고 낮은 진동이 손끝을 통해 전해졌다.
“너, 아까 어미가 숲 서쪽에는 엘프들이 산다고 했잖아.” 소영이 털을 긁어주며 무심한 척 물었다.
“긴 귀를 가진 것들. 걔네들은 숲에 아예 안 들어와? 너희들한테 해코지하거나 그런 적은 없고?”
여우의 귀가 쫑긋 움직였다. 가려움이 해소되는 쾌감 속에서도 감각을 집중하는 듯했다.
“안 들어와. 숲의 경계를 넘는 냄새가 나면, 나무들이 화를 내.”
“나무들이 화를 낸다고?”
“응. 엄마가 그랬어. 뿌리가 움직이고, 가시덤불이 길을 막는대. 긴 귀 족은 나무의 화를 무서워해. 인간들은… 쇠 냄새가 나. 날카롭고 무서운 냄새. 하지만 그들도 안쪽 깊은 곳으로는 오지 못해. 어둠 속에 눈이 많은 짐승이 산다고 인간들이 서로 말하는 걸 새들이 들었대.”
소영은 턱을 문질렀다. 동물의 시각에서 해석된 정보지만, 핵심은 명확했다. 이 숲 자체에 어떤 방어 기제—마법적인 것이든 생태적인 것이든—가 존재하고, 양쪽 문명 모두 그것을 꺼린다는 것. 그리고 인간들이 두려워하는 '눈이 많은 짐승’이라는 소문은 어쩌면 과장된 전설일 수도 있고, 실존하는 위협일 수도 있었다.
“그 눈 많은 짐승이라는 거, 본 적 있어?”
“아니. 숲 가장 깊은 곳, 햇빛이 닿지 않는 축축한 골짜기에 산대. 우린 근처에도 안 가.”
여우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본능적인 두려움이 감각으로 전이되어 왔다. 소영은 긁어주던 손길을 멈추고, 여우의 등을 길게 쓰다듬어 진정시켰다. 적어도 당장 그 짐승이 오두막까지 쳐들어올 일은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금은 방금 메운 진흙 틈새가 굳기를 기다리며, 다가올 밤을 준비하는 것이 먼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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