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이세계 숲속 동물병원 (4화: 뿔 달린 오소리와 이세계 수의사의 첫 수술)
간판의 기둥 그림자가 흙바닥 위로 길게 늘어지기 시작했다.
뿔이 달린 오소리는 간판 아래에 주저앉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회색 털로 덮인 두꺼운 흉곽이 불규칙하게 팽창했다가 꺼졌다. 소영은 들고 있던 진흙 묻은 나무 막대기를 바닥에 천천히 내려놓았다. 상대가 포식자인지 초식동물인지, 혹은 이 숲의 어떤 생태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수의사로서의 본능은 동물의 종이 아니라 증상에 먼저 반응했다.
거리가 좁혀지자 냄새가 훅 끼쳐왔다. 고기 스튜의 짭조름한 냄새를 뚫고 들어오는, 달큰하면서도 비릿한 부패의 냄새.
‘감염이다.’
오른쪽 눈 위부터 귀 아래까지 사선으로 그어진 열상은 피부가 찢어진 수준이 아니었다. 상처의 가장자리는 이미 검붉게 괴사하기 시작했고, 그 중심부에서는 옅은 누런색의 진물이 털과 엉겨 붙어 두꺼운 딱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상처 주변의 근육이 미세하게 경련하는 것이 육안으로도 보였다.
소영은 오소리의 시야에 자신의 전신이 들어오도록 천천히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양손의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바닥에 댔다.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보여주는 본능적인 항복 혹은 평화의 제스처.
오소리의 탁한 검은색 눈동자가 소영을 향했다. 눈동자 주변의 실핏줄이 터져 붉게 물들어 있었다.
“상처가 깊네.”
소영이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가만히 있어봐, 소독부터 할게.”
말소리가 입술을 떠남과 동시에, 소영은 의식을 집중했다. 새끼 여우나 어미 여우와 소통할 때 자연스럽게 열렸던 그 감각의 통로를, 눈앞의 이 두껍고 낯선 짐승을 향해 의도적으로 뻗어 보았다.
순간, 묵직한 진동이 머릿속을 때렸다.
여우들과의 소통이 바람에 실려 오는 뚜렷한 이미지나 선율 같았다면, 이 동물의 의식은 젖은 흙이나 두꺼운 바위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저주파의 울림이었다. 구체적인 단어는 없었다. 오직 살갗을 찢는 고통, 타오르는 듯한 열기, 그리고 낯선 존재(소영)에 대한 극도의 경계심이 뒤엉킨 덩어리가 소영의 신경계를 직접 강타했다.
소영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동물의 고통이 감각을 통해 생생하게 전이되어 온 탓이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며, 자신의 머릿속에서 ‘치료’, ‘시원함’, '안전’이라는 물리적 감각의 기억을 끌어올려 오소리 쪽으로 강하게 밀어냈다. 주사 바늘을 찌르기 전 동물을 진정시킬 때 사용하던, 단호하지만 부드러운 압박감의 이미지를 함께 실었다.
오소리의 앞발톱이 흙바닥을 깊게 파고들었다. 주둥이 끝에 돋아난 작은 뿔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러나 짐승은 몸을 일으키거나 이빨을 드러내지 않았다. 머릿속을 울리던 경계의 저주파가 아주 조금, 의심을 품은 채로 잦아들었다.
허락이었다. 아니, 도망칠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자의 체념에 가까웠다.
소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소리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뒷걸음질로 화덕까지 이동했다.
“여우야, 냄비.”
곁에서 꼬리를 다리 사이로 말아 넣고 잔뜩 긴장해 있던 새끼 여우가 움찔하며 소영을 올려다봤다.
“저거, 냄새 이상해. 아픈 냄새, 무서운 냄새 나.”
“알아. 그러니까 조용히 있어 줘. 놀라게 하면 안 돼.”
소영은 방금 전까지 고기 스튜를 끓였던 주석 냄비를 집어 들었다. 바닥에 기름기가 남아 있었다. 이대로 물을 끓여 상처에 부었다간 감염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그녀는 냄비를 들고 개울가로 달려갔다. 차가운 물과 모래를 듬뿍 퍼 담아 냄비 안쪽을 박박 문질러 씻어냈다. 손끝이 얼얼해질 정도로 세 번을 반복한 뒤에야, 기름기가 가시고 차가운 쇳내만 남았다.
개울물을 절반쯤 채운 냄비를 화덕 위에 올렸다. 아직 열기가 남아 있는 숯덩이 위로 마른 잔가지를 부러뜨려 얹고, 엎드려 입김을 불어넣었다. 매캐한 연기가 눈을 찔렀지만 멈추지 않았다. 불꽃이 다시 튀어 오르고 냄비 바닥을 핥기 시작했다.
물이 끓어오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소영은 오두막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선반 위를 더듬어 먼지가 묻은 병들을 확인했다.
어제 절반쯤 썼던 소독용 휘발성 액체가 담긴 병.
녹색 허브 연고가 바닥에 깔려 있는 병.
그리고 어제 빨아서 햇볕에 말려둔 찢어진 블라우스 천 조각들.
소영의 손가락이 멈칫했다. 이 세계에 떨어질 때 입고 있던 옷의 잔해, 그리고 이 오두막에 처음부터 남겨져 있던 기성품 약재들. 이것들을 다 써버리고 나면, 그녀는 정말로 이 숲에서 스스로 모든 것을 조달해야만 했다. 문설주에 매달아 둔 야생 쑥이 눈에 들어왔지만, 아직 완전히 건조되지 않았다.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건 병에 남은 약들뿐이다.
병과 천을 챙겨 밖으로 나오자, 냄비의 물이 바글바글 끓고 있었다. 소영은 블라우스 천을 여러 조각으로 찢었다. 가장 깨끗한 천 조각 하나를 끓는 물 속에 집어넣어 열탕 소독을 했다. 나뭇가지 두 개를 젓가락처럼 쥐고 천을 건져내어 바위 위에서 식혔다. 남은 끓인 물은 냄비째 들어 서늘한 흙바닥에 내려놓았다. 피부에 닿았을 때 화상을 입지 않을 정도의 미온수로 식어야 했다.
시간이 늘어지는 것 같았다. 소영은 냄비에 손등을 대보며 온도를 가늠했다. 체온보다 약간 높은, 미지근한 상태.
소영은 미지근한 물이 담긴 냄비와 약병들을 들고 오소리에게 다가갔다.
“자, 시작할게.”
소영은 소독한 천 조각을 미지근한 물에 적셔 물기를 짜냈다. 그리고 오소리의 얼굴 위를 덮고 있는 진물과 굳은 피, 엉겨 붙은 털을 살살 닦아내기 시작했다.
젖은 천이 환부에 닿는 순간, 오소리의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크르르르…!”
낮은 마찰음이 짐승의 목구멍 깊은 곳에서 끓어올랐다. 소영의 머릿속으로 불에 데는 듯한 통증의 파동이 강렬하게 밀려들었다. 소영은 입술을 꽉 깨물어 신음을 참아냈다. 그녀의 시야가 잠깐 흔들렸지만, 손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옳지, 괜찮아. 잘 참고 있어.”
피딱지가 불어 떨어져 나가며 진짜 상처의 깊이가 드러났다. 피하 지방층이 보일 정도로 깊숙이 패인 상처였다. 무언가의 발톱에 긁힌 자국. 감염되어 부어오른 조직 사이로 누런 고름이 배어 나왔다. 소영은 물을 여러 번 갈아 적시며 고름과 괴사한 조직의 겉면을 최대한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비릿한 냄새가 코를 마비시킬 지경이었다.
오소리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고, 앞발톱이 바닥의 흙을 쥐어뜯었다. 하지만 도망치려 하거나 소영의 손을 물지는 않았다. 고통 속에서도 이 행위가 자신을 죽이려는 것이 아님을 머릿속의 진동을 통해 인지하고 있는 듯했다.
상처 주변이 어느 정도 깨끗해지자, 소영은 소독액이 담긴 병의 코르크 마개를 열었다. 알코올과 비슷한, 눈을 시리게 하는 휘발성 냄새가 퍼졌다. 소영은 마른 천 조각에 소독액을 듬뿍 부었다. 병은 완전히 비워졌다.
“이게 제일 아플 거야.”
소독액을 머금은 천이 열상 부위에 닿았다.
“끼기기긱——!”
짐승이 금속성의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획 틀었다. 묵직한 앞발이 허공을 갈랐고, 소영은 반사적으로 상체를 뒤로 젖혀 공격을 피했다. 앞발톱이 소영의 청바지 무릎을 스치고 지나가며 옅은 스크래치를 남겼다.
“가만!”
소영이 평소보다 큰 목소리로 외쳤다. 권위와 통제를 담은, 수의사 특유의 발성이었다.
동시에 머릿속으로 '참아!'라는 강렬한 정지 명령을 쏘아 보냈다. 오소리의 몸이 허공에 뜬 채로 굳어버린 듯 멈칫했다.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호흡이 가빠졌다. 소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억센 짐승의 목덜미를 왼손으로 단단히 눌러 고정하고, 오른손으로 남은 소독액을 상처 구석구석에 확실하게 발라냈다. 화학 반응으로 미세한 거품이 일며 남은 세균들을 태워 죽이는 냄새가 났다.
고통의 정점이 지나가자, 오소리의 팽팽했던 근육이 거짓말처럼 툭 풀렸다.
상처를 집어삼키던 열기가 소독액의 기화와 함께 순식간에 날아갔다. 머릿속을 찌르던 짐승의 통증 신호가 무뎌지고, 대신 차가운 물과 소독액이 남긴 얼얼하고 시원한 감각이 웅웅거리는 진동으로 바뀌어 전해졌다.
소영은 목덜미를 누르던 손에 힘을 빼고, 마지막 남은 녹색 허브 연고 병을 들었다. 손가락으로 연고를 남김없이 긁어내어 벌어진 열상 부위에 두껍게 채워 넣었다. 시원한 풀향기가 비린내를 덮었다. 피부 조직에 진정 효과가 스며들며, 오소리의 탁한 눈동자가 천천히 감겼다.
남은 문제는 붕대였다.
안면부의 상처, 그것도 코끝에 뿔이 나 있고 귀가 짧은 두상의 구조상 천을 감기가 쉽지 않았다. 소영은 깨끗하게 빨아둔 블라우스 천을 길게 찢었다.
“머리 조금만 들게.”
소영은 오소리의 턱 아래로 천을 통과시켰다. 귀와 뿔 사이의 좁은 틈새로 천을 교차시켜 단단하게 당겼다. 한 바퀴, 두 바퀴. 상처가 완전히 덮이고 연고가 밀착되도록 압박을 가한 뒤, 목덜미 뒤쪽에서 두 번 묶어 매듭을 지었다. 짐승의 머리에 씌워진 하얀 천 조각은 이질적이었지만, 더 이상의 오염은 막아줄 터였다.
모든 처치가 끝났다.
소영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눈썹을 타고 속눈썹에 맺혔다. 두 손은 고름과 핏물, 젖은 흙으로 엉망진창이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극도의 긴장감이 풀려나가며 찾아오는 반동이었다.
머릿속으로 아주 고요한 파동이 밀려왔다.
“(…가라앉는다.)”
단어가 아닌 감각. 상처를 갉아먹던 벌레들이 사라지고, 흙 속에 파묻힌 듯한 시원함과 묵직한 안도감.
간판 기둥 밑의 오소리는 턱을 앞발 위에 올려놓은 채 완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흉곽의 불규칙했던 팽창이 느리고 일정한 리듬으로 바뀌었다. 죽음을 기다리는 짐승의 호흡이 아니라, 치유를 위한 깊은 수면의 호흡이었다.
멀찍이 떨어져 상황을 지켜보던 새끼 여우가 꼬리를 살랑이며 소영의 곁으로 다가왔다.
“무서운 냄새 안 나. 이제 풀 냄새 나.”
새끼 여우가 소영의 피 묻은 무릎에 코를 비비며 말했다. 소영은 헛숨을 들이켜며 웃었다. 피로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응. 치료 끝났어.”
소영은 비어버린 소독액 병과 연고 병을 바라보았다.
투명한 유리병 속은 텅 비어 있었다. 이제 현대 문명이 남긴 항생 물질은 한 방울도 남지 않았다. 소영은 고개를 들어 문설주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는 야생 쑥 무더기를 바라보았다. 햇볕이 중천을 지나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며 숲의 그림자가 다시 길어지고 있었다. 다음 환자가 찾아왔을 때, 그녀는 오롯이 이 숲에서 찾아낸 것들만으로 생명을 구해야 할 것이다.
그녀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시 개울가로 걸음을 옮겼다. 차가운 물에 손을 담그자, 핏물이 붉은 안개처럼 수면 아래로 퍼져나갔다. 이계에서의 두 번째 치료, 그리고 첫 번째 수술적 처치가 남긴 잔해들이 씻겨 내려갔다.
| 🏥 현재 진료소 상태 요약 |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