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이세계 숲속 동물병원 (8화: 수면에 비친 낯선 얼굴, 완벽한 숲의 주민이 되다)
시간의 흐름은 이제 스마트폰의 전자 시계가 아니라, 문설주에 매달아 둔 야생 쑥 다발의 건조 상태로 측정되었다.
통나무 오두막의 갈라진 틈새로 들이치는 아침 햇살의 각도가 바닥의 절반을 넘어설 무렵이었다. 쑥 잎사귀들은 수분을 완전히 잃고 바스락거리는 암녹색으로 변해 있었고, 오두막 안에는 옅은 먼지와 마른 풀 냄새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소영은 마른 건초 더미 위에 걸터앉은 채, 새로 산 가죽 부츠의 끈을 풀고 두꺼운 무명 양말을 조심스럽게 벗겨냈다. 발뒤꿈치와 발가락 관절 부근을 덮고 있던 하얀 무명천 조각이 떨어져 나갔다.
피부를 갈아먹던 끔찍한 물집과 열상은 이제 옅은 분홍색의 새살을 덮어쓰고 있었다. 손가락 끝으로 상처 부위를 문지르자 약간의 뻐근함과 함께 기분 좋은 가려움이 느껴졌다. 더 이상 증류주를 부어 비명을 삼키지 않아도 될 만큼, 육체의 복원력은 정직하게 제 몫을 다했다. 소영은 다시 양말을 신고 부츠에 발을 밀어 넣었다. 처음 샀을 때 발목을 옥죄던 뻣뻣한 가죽은 그동안의 움직임과 체온에 의해 부드럽게 주름이 잡혀, 이제는 그녀의 발등 굴곡에 꼭 맞게 길들어 있었다.
부츠 끈을 단단히 묶고 일어서자, 바닥의 흙이 단단하게 밟혔다. 통증 없이 체중을 온전히 지탱할 수 있다는 사실이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미세한 활력을 만들어냈다.
“이리 와.”
소영이 손가락을 튕기며 짧은 마찰음을 냈다.
오두막 구석, 화덕의 남은 온기를 쬐며 배를 깔고 엎드려 있던 붉은 털 뭉치가 귀를 쫑긋 세웠다. 새끼 여우였다. 여우는 하품을 길게 하며 작은 송곳니를 드러내더니, 세 다리를 이용해 깡충깡충 뛰어 소영의 발치로 다가왔다. 부목이 대어진 오른쪽 앞다리는 바닥에 끌리지 않도록 용케 들어 올린 상태였다. 며칠 사이, 녀석은 세 다리로 걷는 요령을 완벽하게 터득해 버렸다.
소영은 무릎을 꿇고 앉아 여우의 앞다리를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얌전히 있어. 뼈가 얼마나 붙었는지 볼 거니까.”
여우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소영의 손등을 거칠고 따뜻한 혀로 핥았다. 소영은 시장에서 사 왔던 무명천으로 감아둔 붕대의 매듭을 천천히 풀기 시작했다. 여러 번 겹쳐 감아둔 천 사이사이에 흙먼지와 여우의 빠진 털들이 엉겨 있었다. 마지막 천 조각을 벗겨내고, 지지대 역할을 하던 나뭇가지 부목 두 개를 양옆으로 떼어냈다.
햇빛 아래 드러난 앞다리의 상태는 육안으로 보기에도 많이 호전되어 있었다.
골절 부위 주변을 덮고 있던 부기는 완전히 가라앉았고, 왼쪽 옆구리에 났던 짐승의 발톱 자국 역시 두꺼운 검은 딱지가 떨어져 나가며 그 아래로 옅은 붉은 털이 솜털처럼 돋아나고 있었다. 소영은 양손의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부러졌던 요골과 척골 부근을 아주 세밀하게 촉진하기 시작했다.
손끝에 집중했다. 부드러운 근육과 힘줄 아래, 단단한 뼈의 윤곽이 만져졌다. 부러졌던 단면이 어긋남 없이 매끄럽게 이어져 있었고, 그 이음매 주변으로 뼈를 결합시키는 가골이 형성되어 약간 도톰하게 만져지는 감각이 확실하게 전해졌다.
“아프면 소리 내.”
소영은 여우의 발목 관절을 잡고 아주 미세하게 상하좌우로 굽혀 보았다. 관절의 가동 범위가 줄어들어 약간 뻣뻣하게 움직였지만, 여우는 낑낑거리거나 피하려는 반사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안 아파. 근데 다리가 간지럽고… 무거워.)
머릿속으로 여우의 감각이 희미하게 흘러들어왔다. 오랫동안 근육을 쓰지 않은 탓에 느껴지는 둔탁함과 이물감이었다.
“가골이 꽤 단단하게 자리 잡았어. 어린 개체라 그런지 회복 속도가 엄청나네.”
소영은 떼어냈던 나뭇가지 중 약간 더 얇고 가벼운 것 하나만 골라 다리 바깥쪽에 대고, 무명천을 이전보다 훨씬 느슨한 장력으로 감아주었다. 압박보다는 방향을 잡아주는 최소한의 지지대 역할이었다.
“자, 이제 일어나 봐.”
소영이 뒤로 물러서며 공간을 내어주었다. 새끼 여우는 바닥에 내려놓아진 자신의 오른쪽 앞다리를 신기한 듯 내려다보았다. 붕대가 가벼워지고 관절이 약간 자유로워지자, 녀석은 발바닥 패드를 조심스럽게 흙바닥에 대보았다. 체중을 아주 약간 싣고, 어깨를 움찔거렸다. 무너지지 않았다. 통증의 파동도 없었다.
여우의 금빛 눈동자가 순식간에 동그랗게 커졌다.
여우가 앞발로 흙바닥을 탁탁 내리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좁은 오두막 안을 빙글빙글 돌며 뛰려 했다. 아직 근육이 굳어 있어 걸음걸이는 절뚝거리고 어색했지만, 그 안에는 억눌렸던 야생의 운동성이 폭발적으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어어, 진정해. 무리하게 체중 실으면 뼈 다시 어긋나!”
소영은 급히 여우의 뒷덜미를 가볍게 움켜쥐어 제자리에 멈춰 세웠다. 여우가 헥헥거리며 소영을 올려다보았다. 입꼬리가 귀까지 찢어질 듯 벌어진, 완벽하게 흥분한 짐승의 표정이었다.
“재활을 하긴 해야겠는데… 오두막 안은 좁고 먼지가 너무 나. 밖으로 나가자.”
소영은 선반에 올려두었던 식칼을 허리춤의 가죽 벨트에 꽂아 넣고, 채집용으로 쓰는 낡은 마 자루를 어깨에 멨다. 돌로 문을 괴고 있던 넝쿨을 풀고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의 서늘한 공기가 폐부를 시원하게 씻어 내렸다.
오두막 앞 공터는 아침 이슬을 머금어 짙은 흙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하늘을 가린 수관 틈새로 부서져 내린 빛줄기들이 잎사귀들에 반사되어 연둣빛 난반사를 일으키고 있었다. 처음 이 세계에 떨어져 이 문을 열었을 때, 이곳은 숨이 막힐 듯 거대하고 두려운 미지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매일 아침 오소리가 남기고 간 보석으로 산 물건들을 정리하고, 주변의 약초를 탐색하며 영역을 조금씩 넓혀간 결과, 이제 오두막 주변 반경 오십 미터는 소영의 감각 안에 들어온 통제 가능한 '앞마당’이 되어 있었다.
여우가 소영의 다리 사이를 빠져나가 공터로 튀어 나갔다.
아침 이슬이 맺힌 풀숲으로 다이빙하듯 몸을 던진 녀석은, 이마부터 등까지 풀잎에 묻은 물기를 잔뜩 묻히며 땅을 파고, 냄새를 맡고, 허공을 향해 턱을 딱딱거리며 물어뜯는 시늉을 했다. 부목을 댄 앞다리가 땅에 닿을 때마다 미세하게 움찔거리긴 했지만, 움직임 자체를 멈추지는 않았다.
소영은 여우가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을 정도의 거리만 유지하며 천천히 숲의 경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시선은 바닥의 식생을 향해 있었다. 지난번 마을의 시장에서 사 온 보존식은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미 여우가 이따금 물어다 주는 작은 들쥐나 새의 사체로 단백질을 보충하고 있었지만, 인간의 위장을 채우기 위해서는 식물성 열량과 추가적인 약재가 필수적이었다.
걸음을 뗄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마른 낙엽 소리와, 덜 마른 흙이 부츠 밑창에 짓눌리는 질척한 소리가 교차했다.
고사리 군락이 밀집한 축축한 음지를 지날 때였다. 소영의 눈에 익숙하지 않은 형태의 식물이 들어왔다. 넓은 토란 잎처럼 생겼지만, 잎맥의 색깔이 기이하게도 짙은 보라색을 띠고 있었다. 소영은 무릎을 굽히고 앉아 허리춤에서 식칼을 뽑아 들었다.
칼끝으로 식물 주변의 흙을 둥글게 파 들어갔다. 흙은 습기를 머금어 부드러웠고, 몇 번의 삽질 끝에 굵은 고구마처럼 생긴 뿌리가 통째로 딸려 나왔다. 뿌리를 감싼 흙을 털어내자, 알싸하면서도 매콤한, 마치 생강과 무를 섞어놓은 듯한 자극적인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거, 잘 삶으면 탄수화물 대용이 되거나, 최소한 향신료로는 쓸 수 있겠는데.”
독성의 유무는 아주 조금 잘라 혀끝에 대어보는 방식으로 확인해야 했지만, 일단 무게감과 질감은 훌륭한 식재료의 그것이었다. 소영은 뿌리식물 세 개를 연달아 캐내어 마 자루에 집어넣었다.
그때, 조금 떨어진 양지바른 덤불 쪽에서 푸드득거리는 요란한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리자, 새끼 여우가 덤불 사이를 헤집으며 무언가를 맹렬하게 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녀석의 시선 끝에는 어른 손가락 두 개만 한 크기의, 투명하고 붉은 날개를 가진 거대한 딱정벌레가 땅바닥과 낮게 뜬 허공을 오가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여우의 뒷다리 근육이 용수철처럼 수축했다가 팽창하며 몸을 허공으로 밀어 올렸다. 앞발로 벌레를 덮치려 했으나, 부목 때문에 균형이 무너져 허공에서 몸이 반 바퀴 비틀리며 흙바닥에 툭 떨어졌다.
“야! 무리하지 말라니까!”
소영이 식칼을 내려놓고 황급히 다가가려 할 때, 바닥에 나뒹굴었던 여우가 몸을 벌떡 일으키며 다시 벌레 쪽으로 고개를 고정했다. 여우의 등줄기 털이 빳빳하게 곤두서 있었고, 꼬리는 지면에 수평으로 뻗어 있었다. 완벽한 사냥꾼의 자세였다.
여우의 강렬한 감각이 소영의 머릿속으로 직격해 들어왔다.
“나 이제 안 아파! 뛸 수 있어! 저기 벌레 잡아도 돼?”
어린아이의 칭얼거림이 아니라, 억눌려 있던 야생의 포식 본능이 허락을 구하는 — 혹은 선전포고를 하는 듯한 강렬한 충동의 덩어리였다. 피 냄새와 움직이는 것을 향한 날것의 투쟁심.
소영은 걸음을 멈추었다.
눈앞의 생물은 자신의 침대에서 둥글게 말고 자던 애완동물이 아니라, 이 거칠고 잔혹한 경계림에서 살아남아야 할 야생 여우였다. 언제까지고 뼈가 부러진 환자 취급을 하며 좁은 오두막 안에 가두어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소영은 팔짱을 낀 채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잡아 봐. 대신 앞다리에 너무 힘주지 말고, 뒷다리로만 도약해. 넘어질 때 조심하고.”
그녀의 허락 — 사실상 묵인에 가까운 — 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새끼 여우는 다시 한번 흙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이번에는 앞다리를 땅에 디디는 것을 의식적으로 피한 채, 뒷다리의 탄력만을 이용해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을 갈랐다.
딱,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여우의 주둥이가 허공에서 딱정벌레를 정확히 낚아챘다.
여우가 착지하며 두어 번 구르긴 했지만, 곧바로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입에 문 벌레를 우적우적 씹기 시작했다. 바스락거리는 갑각이 부서지는 소리가 숲의 고요함을 깼다. 녀석의 금빛 눈동자가 의기양양하게 소영을 향했다.
(맛없어. 근데 잡았어. 내가 잡았어.)
여우가 딱딱한 벌레 다리를 뱉어내며 코를 핥았다. 소영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녀는 다가가 여우의 이마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주었다.
“그래, 잘했어. 뼈가 제대로 붙긴 했나 보네. 그래도 오늘은 여기까지. 더 뛰면 내일 아파서 못 일어난다.”
여우는 소영의 바짓단에 몸을 비비적거리며 거친 숨을 내몰아쉬었다. 오랜만의 전력 질주 탓인지 작은 흉곽이 빠르게 오르내렸고, 혀가 길게 빠져나와 있었다. 소영은 여우의 열기를 식혀주기 위해 개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맑고 차가운 물이 흐르는 개울가에 도착하자, 여우는 앞발을 얕은 물에 담그고 혀를 날름거리며 허겁지겁 물을 핥아 먹었다. 소영은 바위에 걸터앉아 마 자루에서 캐낸 보라색 뿌리를 꺼냈다. 개울물에 뿌리를 비벼 씻어내자, 검은 흙이 씻겨 내려가며 보랏빛 껍질이 선명하게 윤기를 냈다.
차가운 물이 손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소영은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질긴 풀잎으로 대충 묶어 넘겼고, 시장에서 산 튼튼한 마직물 튜닉의 소매는 편의를 위해 걷어 올려져 있었다. 이마와 뺨에는 잔가지에 긁힌 자국들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건 더 이상 서울의 수의대생 한소영의 얼굴이 아니었다. 흙냄새를 알고, 짐승의 뼈를 맞추며, 숲의 동향을 살피는 '경계림의 치유자’의 얼굴에 가까웠다.
“돌아가자. 뿌리 삶아서 밥 먹어야지.”
소영은 씻은 뿌리들을 자루에 챙겨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끼 여우가 입가에 물방울을 잔뜩 매단 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소영의 뒤를 따랐다.
숲의 나뭇잎 사이로 부는 바람이 오두막을 향하는 두 존재의 등을 가볍게 밀어주었다. 발밑의 흙은 단단했고, 짐승의 발자국이 그려진 나무 간판은 햇빛을 받아 선명하게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늘 하루도, 이 이계의 숲에서 무사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완벽한 감각이 그녀의 폐를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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