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이세계 숲속 동물병원 (10화: 피 냄새를 지우는 사투와 생존을 위한 육포 스튜)
엘프가 떠난 뒤에도, 좁은 통나무 오두막 안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가장 먼저 소영의 후각을 강타한 것은 완벽하게 현실적인 냄새였다. 바닥의 흙에 스며든 비늘 사슴의 피비린내, 그리고 그것을 덮기 위해 들이부었던 독한 증류주의 알코올 향이 기괴하게 뒤섞여 위장을 뒤틀리게 만들었다.
소영은 건초 더미 위에서 색색거리며 잠든 비늘 사슴의 흉곽이 일정하게 오르내리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호흡수 정상. 출혈 징후 없음.
환자가 안정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아드레날린의 끈이 툭 끊어졌다. 무릎 관절에서 힘이 빠져나가며 바닥으로 주저앉을 뻔한 것을, 그녀는 화덕의 돌 가장자리를 짚어 간신히 버텨냈다. 하지만 쉬고 있을 틈이 없었다.
‘밤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어둠 속에서 눈을 여러 개 가진 것들의 활동이 잦아졌어.’
엘프가 남기고 간 서늘한 경고가 귓가를 맴돌았다. 이 숲의 포식자들은 피 냄새에 굶주려 있다. 바닥에 고인 이 정맥혈의 흔적은 수 킬로미터 밖의 포식자들에게 오두막의 위치를 알리는 완벽한 등대나 다름없었다.
“일단 피 냄새부터 지워야 해.”
소영은 쩍쩍 갈라진 입술을 혀로 축이며 중얼거렸다.
“다른 포식자가 냄새를 맡고 오면 끝장이니까.”
그녀는 문가로 걸어가, 아침에 오소리의 고름을 파낼 때 썼던 뾰족하고 납작한 돌을 다시 집어 들었다. 바닥에 흥건하게 고여 있던 피는 흙의 입자 사이로 스며들어 이미 끈적한 암갈색 진흙 덩어리로 변해가고 있었다. 표면에는 공기와 닿아 응고된 핏덩어리들이 젤리처럼 엉겨 있었다.
돌끝을 세워 핏물이 스며든 바닥을 강하게 긁어내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사아악.
마찰음이 오두막을 울렸다. 소영은 단순히 표면만 긁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피는 생각보다 깊게 흙을 파고들었다. 그녀는 손목에 체중을 실어 이삼 센티미터 깊이까지 흙을 완전히 파헤쳤다. 파낸 오염된 흙더미를 넓은 양치식물 잎사귀 위로 밀어 올렸다.
몇 분의 노동 끝에, 오두막 바닥에는 커다란 접시 모양의 얕은 구덩이가 생겨났다. 그녀는 피가 스며든 흙을 단단히 뭉친 잎사귀 꾸러미를 품에 안고 밖으로 나섰다.
한낮의 태양이 정수리를 때렸다. 눈이 부셨다. 그녀는 오두막 뒤편, 어제 오소리의 고름 흙을 묻었던 구덩이보다 훨씬 멀리 떨어진 양지바른 곳까지 걸어갔다. 나뭇가지로 땅을 깊게 파고, 오염된 흙을 쏟아부은 뒤 주변의 마른 흙과 돌멩이로 단단하게 덮어버렸다. 파리 한 마리 꼬이지 못하도록 위에서 발로 여러 번 밟아 다졌다.
다시 오두막으로 돌아오는 길, 그녀는 냇가 주변의 바싹 마른 모래흙을 양손 가득 퍼 왔다.
그 건조한 모래흙을 오두막 바닥의 패인 구덩이에 채워 넣고, 발바닥으로 꾹꾹 눌러 평평하게 다졌다. 그 위에 증류주를 아주 약간 흩뿌렸다. 남은 피 냄새의 입자마저 알코올과 함께 기화시켜 버리려는 목적이었다.
알코올이 날아가고 나자, 마침내 오두막 안은 평소의 먼지 냄새와 마른 건초 냄새를 되찾았다.
그제야 완벽한 허기가 폭풍처럼 밀려왔다. 위장이 텅 비어 수축하며 등가죽에 들러붙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시야의 가장자리가 하얗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혈당 저하. 몸이 생존을 위한 연료를 필사적으로 요구하고 있었다.
소영은 비틀거리며 화덕 쪽으로 다가갔다.
화덕 위에는 아까 캐온 보라색 뿌리를 삶고 있던 주석 냄비가 놓여 있었다. 불씨가 사그라들어 물은 끓지 않았지만, 냄비 안의 물은 여전히 뜨거운 김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물의 색깔은 탁한 보랏빛으로 변해 있었고, 알싸하고 자극적인 향기가 진동했다.
그녀는 어제 시장에서 사 온 마 자루를 열어 거칠고 단단한 육포 한 덩어리를 꺼냈다.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건조된 고기였다.
도마 대용인 나무판자 위에 육포를 올리고 식칼로 내리쳤다. 칼날이 고기의 결을 튕겨냈다. 그녀는 양손으로 칼자루를 잡고 체중을 실어 육포를 작고 얇은 조각으로 간신히 저며냈다. 잘라낸 육포 조각들을 보라색 물이 담긴 냄비 안에 쓸어 넣었다.
장작을 더 밀어 넣고 입김을 불어 불씨를 살려냈다. 불길이 냄비 바닥을 핥으며 물이 다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십 분 남짓 지났을까. 딱딱했던 육포 조각들이 수분을 머금고 부풀어 오르며, 고기의 짠맛과 기름기가 보라색 뿌리의 전분질과 섞여 걸쭉한 스튜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매운 뿌리의 향이 고기의 누린내를 완벽하게 잡아주었다.
“다행히, 음식물 쓰레기 냄새는 안 나네.”
소영은 나무 국자로 걸쭉해진 국물과 뿌리 조각, 고기 한 점을 듬뿍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후후 불어 입술을 대는 순간, 뜨거운 열기가 혀를 데웠다. 곧이어 뿌리의 강렬한 아린 맛이 입안의 점막을 자극하며 퍼져나갔고, 씹을 때마다 육포에서 배어 나온 짭짤한 고기 육즙이 그것을 중화시켰다. 맛있다고 표현하기는 어려운 자극적이고 투박한 맛이었지만, 위장으로 묵직하게 쏟아져 내리는 칼로리의 감각은 경이로웠다.
그녀는 냄비째 바닥에 내려놓고 국자로 미친 듯이 스튜를 퍼먹었다. 턱을 움직일 때마다 관절에서 소리가 났고, 이마와 콧등에 굵은 땀방울이 맺혔다. 뜨겁고 매운 음식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뱃속을 난로처럼 데웠다. 손끝의 떨림이 서서히 멎었고, 눈앞에 끼어 있던 하얀 점멸이 사라지며 시야가 또렷해졌다.
구석에 숨어 있던 새끼 여우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냄비에서 풍기는 강렬한 매운 향 때문에 가까이 오지는 못하고, 일 미터쯤 떨어진 곳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입맛만 쩝쩝 다셨다.
(고기… 근데 매운 냄새. 코 아파.)
소영은 피식 웃으며, 국자로 육포 조각 몇 개를 건져냈다. 그리고 옆에 있던 깨끗한 물그릇에 그것을 한 번 헹구어 매운 기운과 짠맛을 어느 정도 빼낸 뒤 여우의 앞발 쪽에 던져주었다. 여우는 냉큼 고기를 물고 구석으로 달려가 앞니로 잘게 찢어 삼켰다.
냄비의 바닥이 드러날 무렵, 소영은 부른 배를 문지르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음식이 주는 포만감이 온몸의 긴장을 느슨하게 풀려던 찰나였다.
바스락, 타닥.
건초 더미 쪽에서 불규칙한 마찰음이 들려왔다.
소영은 즉시 나무 국자를 내려놓고 몸을 돌렸다.
마취 — 극도의 쇼크와 피로로 인한 기절 — 에 빠져 있던 비늘 사슴의 상태가 변하고 있었다. 얕고 고르던 숨소리가 거칠게 쌕쌕거리는 소리로 바뀌었고, 관절에 비늘이 돋은 네 다리가 허공을 향해 미세하게 경련하며 흙바닥을 차고 있었다.
짐승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마침내 탁하게 열렸다.
가로로 길게 찢어진 직사각형 모양의 동공. 명백한 초식동물, 즉 피식자의 눈이었다. 초점이 맞지 않아 허공을 떠돌던 동공이, 오두막 천장의 통나무 들보와 화덕의 불빛, 그리고 서서히 다가오는 소영의 인영을 차례로 담아냈다.
순간, 짐승의 전신이 뻣뻣하게 굳었다.
투투툭.
짐승이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발버둥을 쳤다. 봉합해 둔 오른쪽 옆구리의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감아둔 붕대 위로 옅은 핏물이 다시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안 돼! 가만있어!”
소영은 다급히 건초 더미로 몸을 던지듯 다가갔다. 두 손으로 사슴의 가느다란 목과 앞어깨를 지그시, 그러나 단호하게 내리눌렀다. 짐승의 뼈는 조류처럼 가벼웠지만, 공포에 질린 근육이 뿜어내는 반사적인 힘은 그녀의 팔이 덜덜 떨릴 정도로 강력했다.
동시에, 소영의 머릿속으로 폭발적인 파동이 직격했다.
여우들이 보내던 감정이나 이미지와는 달랐다. 뿔 오소리가 보내던 묵직한 단어들과도 달랐다. 오직 한 가지 색깔로만 이루어진 비명이었다.
(도망—잡혔다—물어뜯긴다—어둠—죽는다—죽는다—죽는다—!)
자아나 논리 따위는 완전히 증발한, 먹이사슬 최하층에 있는 생명체가 죽음의 공포 앞에서 내지르는 순도 백 퍼센트의 혼란이었다. 파동이 너무나 날카로워 소영의 관자놀이에 편두통이 일 정도였다.
소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사슴의 목덜미를 누르고 있는 양손의 손바닥을 통해 그녀 자신의 체온과 맥박을 전달하려 애썼다.
머릿속으로 ‘정지’, ‘안전’, ‘차가운 숲의 바닥’ 같은 이미지들을 강하게 떠올리며 사슴의 요동치는 파동 안으로 그것들을 밀어 넣었다. 거센 급류에 조약돌을 던지는 격이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일정한 리듬으로 이미지를 덮어씌웠다.
“이제 좀 정신이 들어?”
소영이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입에서 나오는 소리와 머릿속의 이미지를 동기화시키는 작업이었다.
“아픈 건 어쩔 수 없어. 억지로 움직이지 마. 움직이면 상처가 더 찢어져. 날카로운 것들은 다 사라졌어. 여긴 굴 속이야.”
오 분 가까운 실랑이 끝에, 짐승의 미친 듯한 발버둥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소영의 머릿속을 때리던 공포의 비명도 점차 낮고 축축한 신음으로 바뀌어갔다. 직사각형의 동공이 미친 듯한 확장을 멈추고, 소영의 얼굴을 경계와 혼란이 섞인 채 응시하기 시작했다.
소영은 짐승이 다시 몸을 일으키려 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억누르고 있던 손의 힘을 서서히 뺐다. 대신 사슴의 매끄러운 황갈색 뺨을 손바닥으로 아주 천천히 쓸어내렸다.
뺨에서 느껴지는 열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녀는 손등을 사슴의 귀 밑과 목덜미 쪽으로 옮겨 대보았다. 화끈거리는 열이 피부를 뚫고 올라오고 있었다. 상처가 있는 오른쪽 옆구리 쪽의 붕대 주변은 거의 손난로처럼 뜨거웠다.
‘급성 발열. 상처 부위의 염증 반응이 시작됐거나, 수술 스트레스로 인한 쇼크성 발열이야. 이대로 두면 열경련으로 죽어.’
물리적인 봉합은 성공했지만, 이계의 미생물들이 일으키는 화학적인 감염과 면역 반응은 증류주 소독만으로는 완벽히 억제할 수 없었다.
소영은 뒤로 돌아, 엘프가 선반의 빈 공간에 올려두고 간 잎사귀 꾸러미를 집어 들었다.
투명한 잎사귀를 펼치자, 푸른빛이 감도는 엄지손가락만 한 열매 세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슬 자두’. 겉면에는 아주 얇은 서리 같은 결정이 맺혀 있었고, 오두막 안의 후덥지근한 공기 속에서도 서늘한 한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녀는 돌절구를 화덕 근처에서 끌어왔다. 아침에 야생 쑥을 빻느라 묻어 있던 초록색 잔여물들을 끓인 물로 깨끗하게 헹궈낸 뒤, 이슬 자두 두 개를 절구 안에 넣었다. 나머지 하나는 만약을 위한 예비용으로 남겨두었다.
돌공이로 푸른 열매를 짓찧었다.
찌직, 즙.
열매의 껍질이 터지자마자, 오두막 안의 매캐한 냄새를 단숨에 찢어발기는 강렬한 향기가 터져 나왔다. 깊은 겨울 새벽, 서리가 내린 전나무 숲 한가운데 서 있을 때 코끝을 찌르는 완벽한 냉기와 청량함의 냄새였다. 투명한 푸른색 과즙이 절구 바닥에 고였다.
소영은 작은 나무 국자로 푸른 즙과 으깨진 과육을 조심스럽게 떠냈다.
“입 벌려. 이거 먹어야 열이 내려가.”
그녀는 사슴의 머리맡으로 돌아가, 왼손으로 사슴의 좁은 주둥이를 살짝 벌렸다. 초식동물 특유의 뭉툭한 앞니가 보였다. 사슴이 고개를 저으며 저항하려 했지만 힘이 빠져 그 움직임은 미약했다. 소영은 벌어진 입 틈새로 나무 국자를 밀어 넣고 푸른 즙을 조심스럽게 흘려 넣었다.
즙이 혀에 닿는 순간, 사슴의 눈이 번쩍 뜨였다.
꿀꺽.
반사적인 연하 작용으로 즙이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효과는 그녀의 생물학적 상식을 비웃을 정도로 즉각적이고 파괴적이었다.
사슴의 목덜미를 타고 흐르던 팽팽한 근육의 경직이, 얼음물이 끼얹어진 것처럼 순식간에 탁 풀렸다. 피부 아래에서 끓어오르던 비정상적인 열기가 썰물 빠지듯 눈에 띄게 식어가는 것이 소영의 손바닥을 통해 직접 느껴졌다. 거칠게 헐떡이던 호흡이 마법처럼 깊고 일정한 리듬을 되찾았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공포와 고통의 잔여물마저, 그 차가운 과즙의 기운에 씻겨 내려간 듯 완벽한 고요함으로 바뀌었다.
사슴은 몇 번 입맛을 다시더니, 길게 숨을 내쉬며 턱을 앞발 위에 편안하게 내려놓았다. 눈꺼풀이 무겁게 닫히며 자연스러운 수면 상태로 빠져들었다. 기절이 아닌, 회복을 위한 짙은 잠이었다.
“…이런 게 진짜 판타지 세계의 마법 약이라는 건가.”
소영은 돌절구에 남은 푸른 즙의 흔적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수의학의 체계를 무너뜨리는 압도적인 효능. 만약 이 숲에서 이런 약재들을 자유롭게 구하고 다룰 수 있게 된다면, 그녀가 구축한 이 조잡한 동물병원의 생존력은 차원이 다르게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엘프 같은 존재들과의 지속적인 거래나 숲의 가장 깊은 곳을 향한 위험한 탐색을 의미하기도 했다.
소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의 흙먼지가 바지에 잔뜩 묻어 있었지만 털어낼 힘조차 남지 않았다. 환자는 고비를 넘겼고, 피 냄새는 지웠으며, 배는 부르다. 지금 당장 이 오두막 안에서 그녀의 통제를 벗어난 변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문설주 쪽으로 걸어가, 활짝 열려 있던 문을 밀어 닫았다. 돌을 괴어 문을 고정하고, 틈새로 들어오던 한낮의 햇빛을 차단했다. 오두막 안은 화덕의 잔불만이 붉게 타오르는 아늑한 반음영의 공간으로 변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더 이상은 무리야.”
그녀는 건초 더미의 한쪽 끝, 사슴과 적당한 거리를 둔 곳에 등을 대고 무너졌다. 새끼 여우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소영의 구부린 무릎 뒤쪽 공간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누웠다. 두 마리의 이계 생물과 한 명의 인간.
소영은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닫으며, 다음 날 아침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아주 흐릿하게 그려보다가 깊고 검은 수면 속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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