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이세계 숲속 동물병원 (12화: 숲속의 마녀 소문과 양털 침구가 주는 완벽한 안식)
햇살이 엘프가 묻어둔 검은 수호석의 표면을 비추고 있었다. 수호석은 빛을 반사하지 않고 고스란히 삼켜버리며, 그 중심부에서 아주 미세한 은빛 맥락만을 일정한 주기로 점멸시켰다.
소영은 수호석 주변의 흙을 발끝으로 가볍게 다져놓고 몸을 일으켰다. 오두막 안쪽에서 새끼 여우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와 그녀의 부츠 코에 코를 부비적거렸다. 부목을 완전히 떼어낸 오른쪽 앞다리는 약간 가늘어 보이긴 했지만, 땅을 딛고 체중을 싣는 데는 아무런 무리가 없었다.
“결계도 생겼겠다, 이제 맨바닥에서 자는 건 그만둬야지. 제대로 된 침낭을 사 오자.”
소영은 낡은 마 자루를 어깨에 걸치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차가운 금화와 은화들의 가장자리가 손가락 끝에 딱딱하게 만져졌다. 지난번 보석을 팔아 얻은, 이 세계에서의 유일한 자본이었다.
“나 갔다 올 동안 얌전히 있어. 밖으로 나가지 말고.”
여우는 알아들었다는 듯 짧게 짖고는 햇볕이 잘 드는 문가에 배를 깔고 엎드렸다.
소영은 오두막의 공터를 지나, 나뭇잎이 무성한 숲의 경계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수호석의 반경 밖으로 나서는 순간, 물리적인 변화가 즉각적으로 피부를 덮쳐왔다. 진공 상태처럼 고요하던 공기의 압력이 확 풀리며, 숲의 온갖 백색 소음들—수관이 바람에 흔들리는 파도 소리, 풀벌레들의 날갯짓,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른 가지가 부러지는 파열음—이 고막을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짧게 숨을 들이마시고 숲의 동쪽, 물길이 흐르는 방향으로 방향을 잡았다.
며칠 전 피투성이가 된 발로 죽을힘을 다해 걸었던 그 길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걸음은 달랐다. 발목과 발등의 굴곡에 완벽하게 맞춰진 가죽 부츠는 흙바닥의 충격을 부드럽게 흡수했고, 양발에 잡혔던 물집들은 이미 두꺼운 굳은살로 변해 있었다. 근육은 숲의 불규칙한 지형을 오르내리는 데 필요한 긴장과 이완의 리듬을 체득한 상태였다.
축축한 부엽토가 단단하게 다져진 황무지의 흙길로 변할 때쯤, 해는 이미 하늘의 중간 지점을 향해 치솟아 있었다.
바람에 실려 오는 매캐한 화덕의 연기 냄새와 가축의 분뇨 냄새. 경계 마을의 초입이었다. 소영은 숲의 가장자리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튜닉에 묻은 나뭇잎 부스러기들을 탁탁 털어냈다. 머리를 묶은 넝쿨 끈을 단단히 조여 매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으로 자연스럽게 섞여 들었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지난번 육포를 샀던 중앙 광장 근처의 주점이었다.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주점 안은 짐꾼들과 상인들로 북적였다. 시큼한 에일 맥주 냄새와 돼지기름이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소영은 가장 구석진,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는 어두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종업원이 다가오자 그녀는 은화 한 닢을 테이블 위에 밀어놓았다.
“물 탄 에일 한 잔, 그리고 소금 뿌린 콩 삶은 것.”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소영은 차가운 나무 잔을 입가에 댄 채 천천히 주변의 소리에 귀를 열었다. 그녀의 목적은 엘프들에게 흘렸던 자신의 정보가, 인간 세계의 상인들에게 어떤 식으로 굴절되어 도달했는지 확인해야 했다.
옆 테이블에서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뜯고 있던 털보 용병과 깡마른 상인의 대화가 그녀의 귓바퀴에 걸려들었다.
“그래서 내가 장담하건대, 이번 달 목재 할당량은 채우기 글렀어. 벌목꾼 놈들이 숲 가장자리에도 얼씬을 안 하려고 든다니까.”
“눈알 많은 마수 소문 때문이오? 거 참, 십 년째 똑같은 핑계구만.”
“이번엔 좀 달라. 엘프 놈들 입에서 나온 소문이 돌고 있거든.”
소영은 잔을 기울이던 손을 아주 미세하게 멈췄다. 맥주의 시큼한 거품이 윗입술을 적셨다.
“엘프들이 뭐라는데?”
“숲 안쪽 깊은 곳, 마수들이 우글거리는 저주받은 땅 한가운데에… 짐승의 가죽을 쇠로 꿰매는 마녀가 살고 있다더군.”
“마녀?”
“그래. 뿔 달린 짐승이고 피 흘리는 괴물이고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불러모아서, 산 채로 살가죽을 실로 얽어매고 있다고 하던데. 엘프들도 기분 나쁜 기운이 느껴진다며 그 구역으로는 순찰을 돌지 않는다고 대장장이 놈한테 흘렸답디다.”
소영의 미간이 좁혀졌다.
‘…마녀라니. 엘프들의 어휘력이 문제인 건지, 인간들의 상상력이 문제인 건지.’
하지만 나쁜 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의 오두막 주변에 쳐진 엘프의 수호석과 시너지를 일으켜, 호기심 많은 사냥꾼이나 약초꾼들의 접근을 완벽하게 차단해 줄 수 있는 훌륭한 심리적 방어막이었다.
소영은 남은 맥주를 단숨에 들이켜고 테이블을 일어났다. 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둔탁하게 울렸다. 정보 수집은 끝났으니, 이제 주머니 속의 무게를 줄이고 등짐의 무게를 늘릴 차례였다.
광장을 가로질러 대장간과 철물점들이 늘어선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풀무질 소리와 쇳물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녀는 가장 무쇠 도구들이 투박하게 쌓여 있는 노점 앞에 멈춰 섰다.
“목공용 톱 하나, 그리고 중간 크기의 망치, 그리고 굵은 쇠못 한 줌 주시오.”
상인이 숯검정이 묻은 손으로 톱의 날을 쓸어보며 대답했다.
“나무를 벨 거요? 날이 꽤 억센데.”
“오두막에 선반이나 나무틀 같은 걸 짤 겁니다.”
소영은 상인이 내민 무거운 쇠뭉치들을 받아 들었다. 마 자루에 집어넣자 어깨가 뻐근하게 가라앉았다. 엘프가 준 뼈칼은 정밀한 외과 수술에는 완벽했지만, 굵은 통나무를 자르거나 환자들을 위한 목재 우리를 짜는 데는 이런 인간들의 투박한 무쇠 도구가 필수적이었다. 은화 두 닢이 상인의 손으로 넘어갔다.
다음은 시장 안쪽의 식료품 거리였다.
그녀의 시선은 며칠 전부터 간절히 원했던 것에 꽂혔다. 소금과 각종 말린 향신료를 쌓아놓고 파는 상점. 소영은 거친 가루 소금이 가득 담긴 가죽 주머니와, 지구의 후추와 비슷한 알싸한 향을 내는 검은 열매 가루, 그리고 말린 마늘 냄새가 나는 건조 식물 뿌리를 넉넉하게 구매했다. 숲에서 캐낸 보라색 뿌리만으로는 환자들의 약식을 끓일 때 누린내를 완전히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외출의 가장 큰 목적지인 포목점 앞에 섰다.
포목점 앞에는 짐승의 털을 그대로 살린 모피부터 얇은 마직물까지 다양한 질감의 천들이 매달려 있었다. 상점 주인은 소영의 행색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심드렁하게 물었다.
“천을 떼러 왔수? 아니면 다 지어진 옷을 찾수?”
“가장 두껍고 질긴 무명천 세 마, 그리고 양털을 꽉 채워 누빈 두꺼운 침구 두 개 주시오.”
상인의 눈썹이 위로 치솟았다.
“양털 누비 침구? 그건 겨울에 귀족 집안의 마부들이나 쓰는 물건인데. 가격이 꽤 나갈 거요.”
소영은 말없이 바지 주머니에서 노란빛을 발하는 금화 한 닢을 꺼내어 매끄러운 나무 매대 위에 올려놓았다.
금화가 나무와 부딪히며 내는 경쾌한 타격음. 그 소리 하나로 상인의 심드렁하던 태도가 완벽하게 무너져 내렸다. 상인의 눈동자에 짙은 탐욕과 당혹감이 동시에 어렸다. 그는 황급히 허리를 숙이며 매대 안쪽의 창고로 뛰어 들어갔다.
잠시 후, 밧줄로 단단히 묶인 거대한 천 꾸러미 두 개가 매대 위로 쿵, 하고 떨어졌다.
“질긴 캔버스 천으로 겉을 덧대고 안에는 세 번 세척한 양털을 꽉 채웠소. 냉기 차단에는 이만한 게 없지.”
소영은 손을 뻗어 천의 표면을 쓸어보았다. 투박하고 거칠었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두께감과 푹신함은 지난 며칠간 맨 흙바닥에 건초를 깔고 잤던 그녀의 뼈마디를 녹여버릴 것만 같은 유혹적인 질감이었다. 환자용으로 쓸 세탁 가능한 얇은 무명천들도 꼼꼼히 확인했다.
“이걸 전부 하나의 큰 자루에 묶어 주시오. 등판에 지고 갈 수 있게.”
거스름돈으로 받은 수많은 은화들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그녀는 상인이 단단하게 결박해 준 거대한 짐짝을 어깨와 등에 짊어졌다. 톱과 망치, 향신료, 그리고 두 채의 양털 침구가 들어간 마 자루는 그녀의 상반신만 한 크기였다. 어깨끈이 쇄골을 파고드는 강렬한 압박감이 전해졌다.
태양이 서쪽 하늘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거북이 등껍질 같은 짐을 짊어진 소영은 시장 골목을 빠져나와 다시 숲을 향한 긴 흙길 위로 발을 내디뎠다.
마을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등 뒤로 쏟아졌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한 걸음을 뗄 때마다 어깨를 짓누르는 물리적인 무게만이 현실이었다. 황무지를 가로지르는 내내 이마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턱 끝에 맺힌 땀방울이 뚝뚝 떨어져 흙길을 적셨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며칠 전 같은 길을 걸으며 느꼈던 그 맹렬한 공포심은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어둠이 내리는 숲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뇌리에는 그 숲의 중앙에 단단하게 박혀 있는 '엘프의 수호석’이 주는 절대적인 안전의 감각이 닻처럼 내려져 있었다. 돌아갈 집이 있고, 그 집이 완벽하게 안전하다는 인식이 육체의 고통을 상쇄시키고 있었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숲의 수관 아래로 짙은 어둠이 깔릴 무렵, 소영은 마침내 오두막 앞의 공터에 도달했다.
수호석의 반경 안으로 발을 들이자마자, 숲의 온갖 소음과 불안한 공기가 일순간에 증발하며 완벽한 진공의 평온함이 그녀를 감쌌다.
“하아….”
소영은 오두막의 문을 밀고 들어가자마자 짊어지고 있던 거대한 자루의 매듭을 풀고 어깨에서 짐을 바닥으로 쿵, 하고 떨어뜨렸다. 무릎이 꺾이며 흙바닥에 주저앉았다. 새끼 여우가 잠에서 깨어 눈을 비비며 다가와 그녀의 땀범벅이 된 목덜미를 핥았다.
“기다려봐. 좋은 거 깔아줄 테니까.”
소영은 떨리는 손으로 마 자루를 풀어 헤쳤다. 톱과 망치, 향신료 주머니를 한쪽으로 치워두고, 거대한 양털 누비 침구의 결박을 풀었다.
둘둘 말려 있던 침구를 건초 더미 위에 길게 펼쳤다. 흙바닥의 냉기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두껍고 푹신한 양털의 질감. 소영은 그대로 그 위에 상체를 무너뜨렸다. 얼굴에 닿는 거친 캔버스 천의 냄새가, 지구의 최고급 호텔 침구보다 훨씬 더 달콤하고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여우도 새로운 바닥의 푹신함이 마음에 들었는지, 침구의 가장자리로 뛰어 올라와 몸을 둥글게 말고는 작게 콧소리를 냈다.
소영은 침구 위에 대자로 뻗어 누운 채, 캄캄한 통나무 천장의 들보를 멍하니 응시했다.
“나, 진짜 여기서 살 작정인가 보네.”
조난을 당해 구조를 기다리는 이방인의 사고방식은 완전히 증발했다. 식기를 사고, 목공 도구를 구하고, 침구를 마련했다. 환자가 늘어날 것을 대비한 붕대용 무명천까지 넉넉하게 샀다. 이 행위들은 생존을 넘어서서, 이 세계의 생태계 안에 자신의 영토를 물리적으로 확립하겠다는 선언과도 같았다.
소영은 눈을 천천히 감았다. 주머니 속에 남아 있는 은화들의 서늘한 감촉과, 등 아래에서 느껴지는 푹신한 양털의 온기가 이질적으로, 그러나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그녀를 깊고 편안한 수면의 심연으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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