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이세계 숲속 동물병원 (16화: 피 냄새에 미쳐 날뛰는 거대 늑대, 그리고 압도적인 기세의 "앉아")

 오른쪽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가 척추를 휘어지게 만들고 있었다.


소영의 낡은 가죽 부츠가 축축한 부엽토를 짓이기며 앞으로 나아갔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등 뒤에 짊어진 마 자루 안에서 물컹하고 무거운 질감이 덜렁거렸고, 굵게 짜인 마직물 틈새로 배어 나온 검붉은 핏물이 그녀의 튜닉 등판을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 늪지대 특유의 썩은 물 냄새와, 늙은 물소의 사체에서 풍기던 강렬한 철분 냄새가 코끝에 진득하게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어미 여우가 길을 안내해 준 덕분에 짐승의 사체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뼈칼의 예리함은 두꺼운 물소의 가죽과 근육을 두부 썰듯 쉽게 해체해 냈고, 소영은 가장 상태가 좋은 뒷다리살과 몸통의 붉은 살코기들을 미친 듯이 자루에 쓸어 담았다. 문제는 그 어마어마한 고깃덩어리들을 메고 숲을 되돌아오는 과정이었다.


양 허벅지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고, 마 자루의 끈이 파고든 어깨는 이미 감각이 마비된 지 오래였다.

앞장서서 걷던 두 마리의 여우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이 앞은 그 은빛 머리칼이 세운 기둥의 영역이다. 숲의 눈이 가려진 곳. 우리는 여기까지다.)


어미 여우의 묵직한 파동이 소영의 머릿속을 울렸다. 소영은 가쁜 숨을 내몰아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시야 끝으로,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보이지 않는 일렁임—엘프의 수호석이 만들어낸 결계의 경계면—이 아른거리는 것이 보였다.


“안내해 줘서 고마워요. 조심히 돌아가요.”

어미 여우는 짧게 코를 울리더니, 꼬리를 한 번 우아하게 흔들고는 새끼 여우와 함께 덤불 속으로 사라졌다.

소영은 다시 이를 악물고 무거운 발걸음을 뗐다.


투명한 막을 통과하는 순간, 고막을 짓누르던 숲의 백색 소음이 일순간에 증발했다. 완벽한 진공과도 같은 적막. 그 기압의 변화가 그녀의 뇌리에 '안전 구역’에 도달했다는 신호를 강력하게 쏘아 보냈다.


오두막 앞 공터의 중앙에 도달하자마자, 소영은 어깨에 멘 마 자루를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철퍼덕.


둔탁하고 무거운 파열음과 함께, 자루 입구가 벌어지며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거대한 붉은 고깃덩어리들이 흙바닥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오두막 앞의 공기를 지배하고 있던 톱밥 냄새와 마른 흙냄새가 완전히 박살 났다. 수 킬로미터 밖의 포식자들을 미쳐 날뛰게 만들기에 충분한, 압도적인 생고기의 비린내가 결계 안을 꽉 채웠다.


그리고 그 냄새는 가장 먼저, 목재 우리 안에 갇혀 있던 이계의 정점 포식자를 깨웠다.


끼기긱— 까앙!


나무창살이 부서질 듯 흔들리며, 거친 발톱이 바닥의 통나무를 긁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소영이 숨을 고르며 고개를 돌렸을 때, 나무 우리 안의 그림자 갈기 늑대는 이미 완전히 몸을 일으켜 세운 상태였다. 수술 부위인 왼쪽 어깨를 약간 절뚝거리긴 했지만, 네 다리로 창살 앞까지 바짝 다가와 있었다. 늑대의 황금색 눈동자가 동공을 바늘처럼 좁힌 채, 바닥에 널브러진 붉은 물소 고기에 미친 듯이 고정되어 있었다.


거친 쇳소리가 섞인 호흡이 창살 사이로 미친 듯이 뿜어져 나왔다. 주둥이 사이로 날카로운 송곳니가 완전히 드러났고, 잇몸이 위로 말려 올라가며 끈적한 타액이 뚝뚝 떨어졌다.


이성이 날아간, 완벽한 포식자의 굶주림이었다.


소영은 바닥에 널브러진 고깃덩어리 중, 성인 남성의 머리통만 한 가장 거대한 뒷다리살 부위를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차갑고 미끈거리는 피가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묵직한 고기를 들어 올린 소영은, 창살 너머로 미친 듯이 콧김을 뿜어내는 거대한 늑대의 정면을 향해 아주 천천히 다가갔다.


그녀의 발걸음 소리에 맞춰, 늑대의 시선이 바닥의 고기 무더기에서 소영의 손에 들린 살코기로 이동했다.


크르르르르—.


우리의 나무 기둥이 흔들렸다. 늑대가 앞발로 창살을 긁어내리며 당장이라도 나무를 물어뜯을 듯 주둥이를 들이밀었다. 그 이빨이 소영의 손목에서 불과 삼십 센티미터 떨어진 곳에서 허공을 베물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고기— 피— 넘겨라—!)


늑대의 본능이 내지르는 비명 같은 텔레파시가 소영의 뇌 점막을 거칠게 긁고 지나갔다. 엄청난 두통이 몰려왔지만, 소영은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고기를 들고 있는 양팔의 근육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결코 고기를 우리 안으로 던져주지 않았다.


그녀는 고기를 쥔 채로 가만히 서서, 창살 너머의 황금색 눈동자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앉아.”

소영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단어는 작았지만, 결계 안의 정적을 찢기에는 충분했다.


늑대의 으르렁거림이 순간적으로 멈췄다. 짐승의 눈동자에 당혹감과 분노가 교차했다. 하찮은 이족 보행 짐승이, 피를 철철 흘리는 먹이를 눈앞에 들이밀고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쾅!


늑대가 온몸을 던져 창살을 강하게 들이받았다. 나무틀이 비명을 지르며 삐걱거렸고, 천장에 묶어둔 칡넝쿨에서 먼지가 쏟아져 내렸다. 충격으로 인해 꿰매놓은 어깨의 봉합 부위가 팽팽하게 당겨지며 짐승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소영은 한 발짝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손에 쥔 피 묻은 고기를 창살의 틈새로 살짝 들이밀어 늑대의 코끝에 냄새를 직접적으로 각인시키며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앉아. 내 말을 알아듣는다는 거 알아. 앉아서 기다리지 않으면, 이 고기는 화덕에 던져서 다 태워버릴 거야.”


소영은 자신의 머릿속에 '타오르는 불꽃’과 ‘검은 재로 변한 고기’, 그리고 '지독한 허기’의 감각을 선명하게 끌어올려 늑대를 향해 강렬하게 쏘아 보냈다. 피비린내에 취해 널뛰던 늑대의 본능 사이로, 그녀가 뿜어낸 이지적이고 차가운 논리의 파동이 쐐기처럼 박혀 들어갔다.


늑대의 흉곽이 거칠게 오르내렸다.


짐승의 내부에서 거대한 투쟁이 벌어지는 것이 눈에 보일 듯 선명했다. 창살을 박살 내고 먹이를 쟁취하려는 태고의 야성과, 눈앞의 이 작고 기이한 존재가 자신의 살을 꿰매어 살렸으며 지금 이 먹이의 생사여탈권조차 쥐고 있다는 차가운 현실 인식.


일 분 같은 십 초가 흘렀다.

소영의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리고, 팔에 쥐가 날 것 같은 한계에 다다랐을 때였다.


쉬이익.

늑대의 코에서 뜨거운 김이 한 줄기 길게 뿜어져 나왔다.


치켜 올라가 있던 잇몸이 서서히 내려오며 날카로운 송곳니가 감춰졌다. 팽팽하게 곤두서 있던 목덜미와 등줄기의 털이 가라앉았다. 늑대의 황금색 눈동자가 소영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본 채로, 거대한 앞다리가 천천히 꺾이며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이어서 뒷다리가 구부러지며, 거대한 짐승이 완벽하게 흙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는’ 자세를 취했다.


그건 굴복이었다.


물리적인 폭력이 아니라, 식량과 치료라는 압도적인 권력 앞에서 이계의 포식자가 이성을 동원해 스스로 본능을 꺾어 누른 순간이었다.


(…이제, 만족하는가.)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온 늑대의 파동은 아까처럼 짐승의 비명이 아니었다. 억눌린 굴욕감과 타는 듯한 갈증, 그리고 눈앞의 인간에 대한 묵직한 인정이 뒤섞인 깊고 탁한 목소리였다.


소영의 굳어 있던 입술 새로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참았던 숨을 내쉬며, 손에 쥐고 있던 거대한 고깃덩어리를 창살의 넓은 틈새 사이로 강하게 밀어 던졌다.


철썩!

피 묻은 살코기가 늑대의 발치에 떨어졌다.


그 순간, 늑대의 몸이 용수철처럼 튀어 나갔다. 아까의 차분함은 온데간데없었다. 거대한 턱이 고깃덩어리를 통째로 집어삼키듯 물고는, 뼈를 부수고 근막을 찢어내는 소름 끼치는 파열음을 내며 허겁지겁 살을 뜯어 넘기기 시작했다. 피가 짐승의 턱관절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소영은 바닥에 놓여 있던 마 자루를 열어 남은 고깃덩어리들을 연달아 창살 너머로 던져주었다.


늑대는 씹는 과정조차 사치라는 듯, 던져주는 족족 고기를 목구멍 뒤로 삼켜 넘겼다. 이십 킬로그램은 족히 넘어 보이던 물소의 뒷다리와 몸통 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두막 앞의 공터에는 오직 짐승이 살을 찢는 질척한 소리와 뼈가 부러지는 둔탁한 타격음만이 가득했다.


마지막 한 조각까지 모두 삼킨 늑대는, 그제야 핏물이 흥건한 바닥을 거친 혀로 싹싹 핥아 올렸다.


식사를 마친 짐승의 부피가 아까보다 확연히 부풀어 오른 것 같았다. 푹 꺼져 있던 뱃가죽이 팽팽하게 차올랐고, 흐릿했던 황금색 눈동자에는 완벽한 생기가 돌아와 있었다. 늑대는 피 묻은 주둥이를 자신의 앞발에 쓱쓱 문질러 닦고는, 다시 몸을 돌려 건초가 깔린 우리 안쪽에 편안하게 턱을 대고 엎드렸다.


(네가 가져온 고기는, 숲의 어떤 사냥꾼이 물어온 것보다 달았다. 살을 엮는 자여.)

포만감에 젖은 늑대의 진동이 부드럽게 소영의 뇌리를 울렸다.


(너는 작고 이빨도 없으나, 생명을 통제하는 법을 아는군. 이 우리가 풀릴 때까지, 네 규칙에 복종하겠다.)

명백한 호의이자, 치유자로서의 완전한 인정이었다.


소영은 튜닉에 묻은 피를 손등으로 훔쳐내며 피식 웃었다. 극도의 긴장이 풀리자 온몸의 관절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피로가 밀려왔지만, 가슴 한구석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뻐근하게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빈 마 자루를 둘둘 말아 챙기고, 손에 묻은 피를 씻기 위해 개울가로 걸음을 옮겼다.

“말 잘 들으니까 보기 좋네. 뼈 다 붙으면 산책이라도 시켜줄게.”


뒤로 돌아서서 무심하게 뱉은 소영의 말에, 늑대는 가볍게 코웃음 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개울의 차가운 물에 손을 담그자, 굳어 있던 핏물이 붉은 안개처럼 수면 아래로 퍼져나갔다. 이마의 땀을 씻어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호석의 보이지 않는 막 위로, 숲의 짙은 어둠이 다시금 무겁게 내려앉고 있었다.


“내일은 저 녀석 붕대도 갈아줘야 하고, 우리 안에 배설물 치울 구멍도 파 놔야겠다.”


소영은 젖은 손을 툭툭 털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피곤했지만 그녀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문을 열고 오두막 안으로 들어서자, 화덕의 온기와 어제 사 온 양털 침구가 그녀를 맞이했다.


그녀는 환자들을 위한 공간을 짓고, 맹수의 식량을 구해왔으며, 그 압도적인 야성을 논리와 규칙으로 찍어 눌렀다. 이제 이 경계림 안에서, 그녀가 통제하지 못할 상황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만 같았다.



🏥 현재 진료소 상태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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