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이세계 숲속 동물병원 (15화: 진찰용 테이블 완성, 환자의 식량을 찾아 죽음의 늪지대로 향하다)
톱날이 굵은 참나무 잔가지의 섬유질을 파고들 때마다, 서걱거리는 거친 마찰음이 엘프의 수호석이 만들어낸 고요한 결계 안쪽을 쩌렁쩌렁 울렸다.
소영은 튜닉의 소매를 어깨 부근까지 걷어붙인 채, 한쪽 무릎으로 나무토막을 짓누르고 오른팔의 체중을 온전히 톱자루에 실었다. 철과 나무가 부딪히며 발생하는 마찰열 때문에 톱날 주변으로 희뿌연 연기가 아주 미세하게 피어올랐고, 송진 특유의 알싸하고 매캐한 냄새가 공기 중에 진동했다.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턱 끝을 타고 뚝뚝 떨어져 새로 산 가죽 부츠의 발등 위로 얼룩을 남겼다.
오두막 앞 공터의 절반은 이미 그녀가 만들어낸 인공적인 구조물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어제 완성한 거대한 늑대의 격리용 나무 우리는 굳건하게 버티고 섰고, 지금 그녀가 짜맞추고 있는 것은 그 우리 바로 옆에 배치될 '진찰용 테이블’이었다. 환자를 맨바닥의 흙먼지 속에 눕혀두고 쭈그려 앉아 수술을 하는 것은 위생상으로나 외과의의 척추 건강상으로나 지속 불가능한 방식이었다.
깡! 까앙!
마지막 쇠못이 망치질에 의해 두꺼운 나무 기둥의 교차점을 관통했다.
소영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허리를 폈다. 가로 2미터, 세로 1미터, 높이는 그녀의 허리춤에 정확히 닿는 평평하고 견고한 나무 테이블이 완성되었다. 바닥이 고르지 않아 다리 밑에 납작한 돌을 괴어 수평을 맞췄다. 양손으로 테이블의 모서리를 잡고 체중을 실어 강하게 흔들어 보았지만, 삐걱거림 없이 땅에 단단히 뿌리를 박은 듯 버텨냈다.
“좋아. 이 정도면 백 킬로그램이 넘는 놈이 올라가도 안 무너지겠어.”
그녀는 손바닥에 잔뜩 들러붙은 톱밥과 흙먼지를 청바지에 툭툭 털어냈다. 그리고 발걸음을 돌려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선반 위에는 그녀의 유일한 마법적 자산이 놓여 있었다. 엘프가 주고 간, 마취와 근육 이완 효과를 지닌 투명한 액체가 담긴 수정 유리병. 소영은 조심스럽게 병을 들어 올려 햇빛이 스며드는 문틈 쪽으로 비춰 보았다.
어제 늑대의 거대한 어깨 상처를 봉합하기 위해 천에 듬뿍 적셔 사용한 탓에, 원래 찰랑거리던 액체의 수위는 이미 절반 이하로 뚝 떨어져 있었다. 투명하고 점성이 높은 액체가 병을 기울일 때마다 벽면을 타고 끈적하게 흘러내렸다.
“마취약이 떨어지면 다음 수술은 끔찍해질 거야.”
소영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패였다. 마취 없이 그 질긴 이계 짐승들의 가죽을 생으로 뚫고 바늘을 밀어 넣는 일은 환자에게도 고문이지만, 발버둥 치는 짐승을 제압해야 하는 그녀 자신에게도 목숨을 건 사투가 될 것이다.
“이 근처에 대체재가 있는지 찾아봐야 해. 엘프들도 결국 숲의 식물에서 성분을 추출했을 테니까.”
코르크 마개를 살짝 열어 냄새를 깊게 들이마셨다. 꿀처럼 달콤하면서도, 코끝을 무겁게 짓누르는 수면제 같은 서늘한 잔향. 이 후각적 단서를 뇌리에 깊숙이 각인시켰다.
그녀는 수정병을 선반 깊숙한 곳에 안전하게 내려놓고 다시 오두막 밖으로 나섰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어제 지어둔 거대한 목재 우리 쪽을 향했다.
나무 창살 너머로, 칠흑 같은 털을 가진 그림자 갈기 늑대가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짐승의 흉곽이 오르내릴 때마다, 창살 사이로 거친 쇳소리가 섞인 호흡이 새어 나왔다. 상처를 꿰맨 어깨 부위의 붕대 위로는 옅은 진물이 배어 있었으나 다행히 출혈은 멎은 상태였다.
문제는 그 압도적인 질량 그 자체였다.
가만히 누워 숨만 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짐승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근육의 부피는 이 개체가 평소에 얼마나 엄청난 양의 열량을 소비하는지를 시각적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소영은 오두막 지붕 들보에 매달아 둔 마 자루를 떠올렸다. 시장에서 사 온 단단한 육포 덩어리들.
“저 덩치를 먹여 살리려면 내 육포 쪼가리로는 턱도 없겠는데.”
소영은 턱을 문지르며 늑대의 닫힌 눈꺼풀을 응시했다.
육식 포식자, 그것도 회복을 위해 대량의 단백질과 아미노산이 필요한 중증 환자였다. 끓인 물에 육포 몇 조각을 불려 주는 식단으로는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근손실이 올 것이며, 최악의 경우 허기를 이기지 못한 늑대가 수호석의 결계고 나발이고 창살을 박살 내고 소영과 여우를 물어뜯을지도 몰랐다.
“식량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지?”
그녀가 인간의 무기로 사냥을 나서는 것은 자살 행위였다. 덫을 놓는 법도 몰랐고, 이계의 날랜 짐승들을 활이나 창 없이 잡을 방도도 없었다.
그때, 오두막 그늘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던 새끼 여우가 하품을 하며 걸어 나왔다. 여우는 다 나은 오른쪽 앞다리를 쭉 뻗으며 기지개를 켜더니, 소영의 부츠 위로 턱을 기댔다.
(배 안 고파? 나도 냄새 맡을 수 있는데. 벌레 말고 진짜 고기 냄새.)
여우의 머릿속 파동이 흘러들어왔다. 순간, 소영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계산식이 세워졌다.
자신에게는 날카로운 송곳니도, 예민한 후각도 없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이미 이 숲의 야생 생태계에 걸쳐 있는 두 개의 강력한 '감각 네트워크’가 있었다.
“가자, 숲으로.”
소영은 결단을 내렸다. 그녀는 엘프가 준 무지갯빛 뼈칼을 허리춤의 가죽 칼집에 꽂아 넣고, 채집용 마 자루를 챙겼다.
“넌 아직 완벽하게 뼈가 굳은 게 아니니까 결계 근처만 맴돌아. 냄새만 추적해 주고.”
소영은 새끼 여우를 데리고 오두막 공터를 가로질러 엘프의 수호석 경계선으로 향했다.
보이지 않는 공기의 막을 통과하는 순간, 먹먹했던 귓바퀴가 펑 하고 뚫리며 숲의 날것 그대로의 소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새들의 날카로운 지저귐,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의 파도 소리, 축축한 부엽토가 썩어가는 짙은 흙냄새. 완벽하게 통제된 무균실에서 시장통 한복판으로 던져진 듯한 극단적인 감각의 전환이었다.
소영은 부츠 바닥이 나뭇가지를 부러뜨리지 않도록 보폭을 줄이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새끼 여우는 그녀의 두어 걸음 앞에서 코를 땅에 박은 채 꼬리를 흔들며 냄새를 쫓기 시작했다.
그들의 첫 번째 목적은 엘프의 마취약을 대체할 식물의 탐색이었다.
소영은 고사리 군락과 이끼가 잔뜩 낀 고목의 뿌리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잎사귀의 모양이 독특하거나 꽃이 핀 식물이 보이면, 여지없이 다가가 잎을 뜯어 냄새를 맡았다. 손가락 끝에 진득한 수액이 묻어났지만, 그 어떤 것도 아침에 맡았던 그 '달콤하고 무거운 수면제’의 향기와 일치하지 않았다.
시큼한 냄새, 톡 쏘는 풀 비린내, 심지어 썩은 고기 냄새를 풍기는 기괴한 꽃까지 다양한 식생이 존재했지만 정답은 없었다.
“이런 방식으로는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야. 엘프들이 그걸 대체 어디서 구해왔는지 알아내야만 해.”
소영이 손에 묻은 진물을 튜닉에 대충 문질러 닦아내며 한숨을 쉬었을 때였다.
앞서 걷고 있던 새끼 여우의 걸음이 갑자기 우뚝 멈췄다. 땅에 박고 있던 코를 번쩍 들고, 귀를 팽팽하게 당겨 한 방향으로 고정했다.
*(…냄새 나. 엄마 냄새!)
새끼 여우가 꼬리를 미친 듯이 휘저으며 양치식물이 무성한 덤불 쪽으로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야! 멀리 가지 말라니까!”
소영이 당황하여 소리치며 그 뒤를 쫓아 덤불을 헤치고 나간 순간, 서늘한 그늘이 진 좁은 공터 한가운데에 익숙한 붉은 털의 짐승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미 여우였다.
어미 여우는 자신의 다리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얼굴을 핥으려 드는 새끼 여우의 목덜미를 거친 혀로 쓰다듬고 있었다. 태양 빛을 받은 어미 여우의 호박색 눈동자가, 덤불을 헤치고 나타난 소영의 모습을 가만히 응시했다.
(네 몸에서 기분 나쁜 냄새가 나는군.)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진동은 이전보다 훨씬 날카롭고 묵직했다.
(어둠의 피 냄새다. 숲의 깊은 곳을 배회하는 포식자의 냄새가 왜 네 옷자락에 묻어 있지?)
야생의 후각은 완벽했다. 소영이 바닥의 피를 박박 긁어내어 파묻고 알코올로 소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튜닉과 피부 깊숙한 곳에 스며든 거대한 늑대의 체취는 지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어미 여우의 등줄기 털이 미세하게 곤두서 있었고, 자세는 언제라도 뒤로 튀어 나갈 수 있도록 뒷다리에 체중이 실려 있었다.
“치료를 해줬어요.”
소영은 칼자루에서 손을 완전히 떼고, 두 손바닥을 보여주며 적대감이 없음을 표했다.
“어젯밤에 큰 상처를 입은 그림자 늑대 한 마리가 오두막으로 찾아왔거든요. 피를 멎게 하고 상처를 꿰매서 지금 우리 안에 가둬두고 있습니다. 다 나을 때까지는 그곳에 있을 거예요.”
어미 여우의 콧잔등이 미세하게 주름졌다.
(네가 살을 엮는다는 소문은 짐승들 사이에서도 바람을 타고 퍼지고 있다. 허나… 그 검은 늑대는 우리 같은 작은 발톱들이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놈은 굶주림에 눈이 멀면 자기 발밑의 그림자마저 씹어 삼키는 놈이다.)
“알아요. 그래서 튼튼한 나무로 우리를 짜서 가둬놨어요. 결계 밖으로 나올 일도, 제가 문을 열어주기 전에 다른 짐승을 덮칠 일도 없을 겁니다.”
소영은 침착하게 대답하며, 시선을 자신의 발밑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는 새끼 여우에게로 내렸다.
“그것보다, 이 녀석 다리 다 나은 거 보이시죠? 뼈가 완전히 붙었어요. 이제 예전처럼 뒷다리로 도약해서 벌레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근육이 회복됐습니다.”
어미 여우의 시선이 새끼 여우의 앞다리로 향했다. 두꺼운 부목과 헝겊이 벗겨진, 본래의 얇고 매끄러운 뼈대. 새끼 여우가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제자리에서 껑충 뛰어오르며 엄마의 코끝을 앞발로 툭 건드렸다.
어미 여우의 팽팽했던 뒷다리 근육이 스르르 풀렸다. 경계심이 한풀 꺾이고, 대신 그 자리에 깊은 안도와 생명의 빚을 졌다는 무거운 부채감이 섞여 들어왔다.
(네가 내 핏줄을 구했다. 그 빚은 내 가죽이 마를 때까지 잊지 않으마.)
“사실, 빚을 갚아주셨으면 하는 일이 하나 생기긴 했어요.”
소영은 주저하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생태계의 포식자에게 빚을 청구하는 행위는 오만해 보일 수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명확한 의무가 있었다.
“아까 말한 그 검은 늑대 말입니다. 상처를 회복하려면 엄청난 양의 고기가 필요해요. 하지만 제게 있는 식량이라고는 말라비틀어진 인간들의 육포 조각뿐입니다. 며칠을 더 버티려면 신선한 생고기가 필요해요. 피가 뚝뚝 떨어지는 그런 것들이요.”
어미 여우의 귀가 뒤로 완전히 젖혀졌다.
(포식자의 밥을, 포식자의 먹이가 구해주길 바라는가? 기이한 부탁이군. 내가 사슴의 숨통을 끊어 그 늑대의 입에 넣어주란 말인가.)
“사냥을 해달라는 게 아니에요. 제가 필요한 건 '정보’와 '길 안내’입니다.”
소영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서며 말을 이었다.
“늑대가 혼자 사냥하다 다쳤다면, 늑대가 먹다 남긴 사냥감의 시체가 숲 어딘가에 남아있지 않을까요? 아니면 최근에 숲에서 큰 짐승들끼리 다툼이 벌어져 죽은 고깃덩어리들이 방치된 곳이라거나. 냄새를 따라 그곳의 위치만 알려주세요. 칼로 고기를 썰어 나르는 건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인간의 논리와 야생의 후각을 결합하는 제안이었다. 어미 여우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코를 벌름거리며 공기 중의 냄새를 읽어내는 듯했다.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수만 가지의 정보 조각들을 뇌 속에서 분류하고 조립하는 야생의 연산.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어미 여우가 묵직한 파동을 쏘아 보냈다.
(…동쪽 물길의 끝. 진흙이 고여 썩어가는 늪지대 주변에, 까마귀들이 이틀째 하늘을 맴도는 곳이 있다. 뿔이 부러진 늙은 물소가 쓰러져 있지. 밤것들이 내장을 파먹었지만, 뒷다리와 몸통의 고기는 아직 썩지 않았다.)
어미 여우가 몸을 돌려 동쪽을 향해 꼬리를 뻗었다.
(내가 길의 입구까지는 냄새를 끌어주마. 허나, 피 냄새가 진동하는 곳에 두 발로 걷는 네가 끼어드는 것은 죽음을 부르는 짓이다. 결계 안의 안전을 버리고 굳이 그 무거운 짐승을 위해 목숨을 걸겠다는 건가?)
“그놈은 내 환자니까요. 입원실에 눕혀놨으면 밥은 먹여서 살려 보내야 제 마음이 편하거든요.”
소영은 어깨에 멘 마 자루의 끈을 단단히 고쳐 쥐었다. 허리춤에 찬 뼈칼의 손잡이가 차갑게 그녀의 손바닥에 닿았다.
“안내해 주세요. 해가 떨어지기 전에는 고기를 썰어서 돌아가야 하니까.”
어미 여우는 더는 반문하지 않는다. 야생은 핑계나 감정을 길게 늘어놓지 않는다. 오직 생존을 위한 움직임과, 빚을 갚기 위한 행동만이 있을 뿐. 어미 여우는 소리 없이 양치식물 사이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새끼 여우 역시 신이 나서 그 뒤를 바짝 쫓았다.
소영은 깊은 숨을 한 번 들이마신 뒤, 두 마리 여우의 붉은 꼬리를 쫓아 경계림의 더 깊고, 더 어두우며,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는 늪지대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결계 안의 푹신한 침구와 안전한 테이블은 이제 수 킬로미터 뒤편에 남겨져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 포식자들의 식탁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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