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이세계 숲속 동물병원 (17화: 작열통 속에서도 이빨을 거둔 맹수, 바닥난 마취약을 찾아 다시 숲으로)

 완벽한 정적이 오두막의 아침을 감싸고 있었다.


소영은 양털 침구의 깊은 수렁 속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두껍고 무거운 캔버스 천이 가슴 위를 짓누르고 있었지만, 그 무게감은 오히려 포대기처럼 아늑한 안도감을 주었다. 전날 무거운 쇠톱과 망치를 휘두르고, 자신의 체중과 맞먹는 거대한 물소 고기를 짊어지고 숲을 횡단했던 혹독한 육체노동의 여파가 고스란히 근육 섬유 마디마디에 들러붙어 있었다.


그녀는 짧은 신음을 내뱉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척추를 곧게 펴자 어깻죽지와 날개뼈 사이에서 뻐근한 통증이 방사형으로 퍼져나갔다. 발밑에서 새끼 여우가 몸을 둥글게 만 채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여우의 붉은 털 위로 오두막의 통나무 틈새를 뚫고 들어온 아침의 얇은 빛줄기가 내려앉았다.


“일어나야지.”


소영은 건조하게 갈라진 입술을 혀로 축이며 침구 밖으로 다리를 빼냈다. 서늘한 흙바닥의 냉기가 부츠를 꿰어 신지 않은 발바닥을 통해 찌릿하게 타고 올라왔다. 그녀는 전날 벗어두었던 가죽 부츠의 끈을 단단히 조여 매고, 늘어난 마직물 튜닉의 소매를 팔꿈치 위로 걷어붙였다.


화덕에는 잿빛 가루만 남아 온기가 완전히 식어 있었다. 그녀는 지체 없이 오두막 한쪽 벽면에 마련된 의료용 선반으로 다가갔다.


목표는 야외 병상에 격리된 첫 번째 중증 환자의 상태 점검이었다.


소영의 손가락이 증류주가 담긴 두꺼운 유리병의 차가운 표면을 감싸 쥐었다. 병을 살짝 흔들어보자, 찰랑거리는 맑은 액체의 양이 눈에 띄게 줄어들어 있었다. 한 번의 대형 수술과 매일 이어지는 소독 과정이 알코올 재고를 무서운 속도로 갉아먹고 있었다.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며, 미리 깨끗하게 삶아 접어둔 무명천 몇 조각과 엘프의 뼈 탐침을 함께 챙겨 들었다.


오두막의 가죽 경첩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자, 폐부를 찌르는 차갑고 청량한 아침 공기가 밀려왔다.


엘프의 수호석이 만들어낸 반경 30미터의 결계 안쪽은 숲의 소음이 완벽하게 차단되어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평화로움과는 대조적으로, 오두막 앞 공터의 공기 중에는 짐승의 짙은 체취가 무겁게 깔려 있었다.


어제 그녀가 땀 흘려 세운 거대한 목재 우리.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칠흑 같은 그림자.


소영이 다가가는 발소리에 맞춰, 목재 우리 안에서 거친 마찰음이 일었다.


건초가 깔린 바닥에 모로 누워 있던 그림자 갈기 늑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황금색의 거대한 눈동자가 창살 너머로 다가오는 소영을 정확히 응시했다. 전날 허기를 견디지 못하고 창살에 몸을 들이받으며 폭주하던 이성의 부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배를 가득 채운 포식자 특유의 나른함과, 상처의 통증에서 기인한 미세한 신경질이 눈동자 깊은 곳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소영은 우리의 문 역할을 하는 굵은 통나무 기둥 앞으로 다가갔다. 단단하게 동여매 두었던 칡넝쿨 매듭을 손으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끼기긱.


창살 하나를 옆으로 밀어내어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좁은 틈을 만들었다.


(…문을 여는가.)


늑대의 머릿속 파동이 소영의 뇌리를 울렸다. 아침의 찬 공기처럼 건조하고 낮게 깔린 진동이었다. 짐승의 턱관절 근육이 미세하게 꿈틀거렸고, 콧구멍이 넓어지며 소영의 몸에서 나는 냄새—인간의 땀 냄새와 알코올의 독한 냄새—를 빨아들였다.


“가만히 있어.”


소영은 틈새로 몸을 비집고 들어가 늑대의 거대한 앞발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어제 고기를 무식하게 먹어대서 실밥이 터지지 않았나 봐야 하니까.”


늑대는 으르렁거리지 않았다. 소영이 유리병과 무명천을 늑대의 가슴팍 앞 흙바닥에 내려놓는 동안, 짐승은 시선을 소영의 손끝에 고정한 채 거친 흉곽만을 오르내렸다. 체온이 공기를 덥혀 그녀의 뺨에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소영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늑대의 왼쪽 어깨를 덮고 있는 무명천 붕대의 매듭을 잡았다.

어제 수술 직후 감아두었던 천은, 상처에서 배어 나온 진물과 피가 말라붙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살에 붙어서 좀 따가울 거야.”


소영은 천의 끝을 잡고 아주 천천히, 살갗과 털의 결을 따라 붕대를 벗겨내기 시작했다. 핏물이 엉겨 붙은 부위가 떨어져 나갈 때마다 늑대의 굵은 근육 다발이 반사적으로 파르르 떨렸다. 짐승의 목구멍 깊은 곳에서 끄으응 하는 억눌린 마찰음이 새어 나왔지만, 늑대는 고개를 돌리거나 앞발을 들어 올려 소영을 거부하지 않았다. 어제 이루어진 식량 공급이라는 절대적인 통제 행위가 짐승의 서열 인식을 완벽하게 재조정해 둔 덕분이었다.


마지막 천 조각이 벗겨지자, 마흔다섯 바늘을 꿰매어 놓은 거대한 열상의 단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소영은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검은 털 사이로 두꺼운 무명실들이 지네의 다리처럼 피부를 교차하여 얽어매고 있었다. 절개선의 틈새로 투명하고 약간 누런빛을 띠는 삼출액(진물)이 배어 나와 딱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려했던 심각한 화농성 염증이나 부종은 보이지 않았다. 흉터 주변의 피부 온도를 확인하기 위해 소영이 손바닥을 펼쳐 늑대의 어깨 근육 위를 가볍게 덮었다.


뜨거웠다. 인간의 정상 체온을 아득히 상회하는 열기가 털을 뚫고 훅 끼쳐왔다. 하지만 국소적인 발열이 아니라, 이계 포식자 본연의 강력한 신진대사가 만들어내는 전신 체온에 가까웠다. 손끝으로 실밥이 들어간 자리 주변의 피부를 살짝 눌러보았다. 피부의 탄력이 살아 있었고, 조직이 죽어 들어가는 괴사 반응의 냄새(부패취)는 나지 않았다.


“다행히 터진 곳은 없네. 식욕이 도는 걸 보니 염증 수치도 생각보다 안 높은 것 같고.”


소영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유리병의 코르크 마개를 이빨로 뽑아냈다. 깨끗한 무명천 한 조각을 알코올에 흠뻑 적셨다.


“소독할게.”


알코올을 머금은 차가운 천이 늑대의 상처 부위에 닿았다.

파앗!


짐승의 온몸이 감전된 것처럼 펄쩍 튀어 올랐다.


어제의 마취 상태와는 달리 온전한 맨정신으로 생살에 닿는 알코올의 작열통을 받아낸 것이다. 늑대의 황금색 동공이 순간적으로 바늘구멍처럼 수축했고, 날카로운 송곳니가 공기를 베물며 찰칵 소리를 냈다. 육중한 꼬리가 바닥을 후려치며 건초 더미를 사방으로 날려 보냈다.


(…타오른다! 불꽃이 물어뜯는다!)


늑대의 텔레파시가 날카로운 창처럼 소영의 머릿속을 찔렀다.


소영의 척추를 타고 반사적인 공포가 흘렀지만, 그녀는 상체를 뒤로 물러서는 대신 오히려 상처를 누르고 있던 무명천에 체중을 더 실어 강하게 압박했다.


“참아! 이 안에 벌레가 알을 까게 놔둘 순 없잖아!”


그녀가 소리쳤다. 알코올이 상처 표면의 단백질과 엉겨 붙은 세균들을 태워 죽이며 미세한 거품을 일으키는 소리가 들렸다. 소영의 콧속으로 피비린내와 독한 술 냄새가 섞여 들어왔다.


늑대의 앞발톱이 바닥의 통나무를 찢을 듯이 파고들었지만, 짐승은 끝내 소영의 목덜미를 향해 이빨을 돌리지 않았다. 맹렬한 고통 속에서도 눈앞의 인간이 자신을 '수리’하고 있다는 명백한 인과관계를 본능적으로 붙들고 있는 묵직한 투쟁. 늑대의 거친 호흡이 소영의 머리칼을 뒤흔들었다.


십 초 남짓한 시간이 영겁처럼 흘렀다.


알코올이 기화하며 타들어 가던 고통이 서늘한 감각으로 바뀌기 시작하자, 늑대의 팽팽했던 근육 경직이 스르르 풀렸다.


짐승은 지친 듯 턱을 바닥에 내리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소영 역시 등줄기로 식은땀이 한 줄기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며 압박하던 손을 뗐다. 그녀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눈앞의 괴물이 마음만 먹으면 1초 안에 자신의 목을 꺾을 수 있다는 물리적 사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이 공간의 지배자라는 심리적 현실이 격렬하게 충돌하며 만들어낸 생리적 반동이었다.


“…잘 참았어.”

소영의 목소리는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그녀는 진물이 깨끗하게 닦여나간 상처 위에 새로운 무명천을 넓게 덮었다. 늑대의 거대한 목 밑으로 팔을 깊숙이 집어넣어 천의 양끝을 교차시켰다. 늑대의 턱 아래 부드러운 털이 그녀의 목덜미를 스쳤고, 짐승의 묵직한 심장 박동이 그녀의 팔뚝을 타고 전해졌다. 더는 두려운 감각이 아니다. 거대한 생물학적 기계의 엔진 소리를 듣는 것과 같은, 기묘한 유대감의 형성.


단단하게 매듭을 묶어 붕대를 고정하는 것으로 처치가 끝났다.


소영은 무릎에 묻은 건초 부스러기를 털어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피 묻은 천 조각과 유리병을 챙겨 들었다.


(…내 몸을 가로지르는 쇠줄이 살을 물고 늘어지는군.)

늑대가 감긴 눈을 반쯤 뜨며 소영의 머릿속으로 파동을 보냈다.


(하지만 어제보다 덜 아프다. 네가 뿌린 차가운 물이 상처의 열을 앗아갔어.)


“염증이 안 생겼으니 며칠 더 있으면 새살이 차오르면서 실을 덮을 거야. 그때 실을 뽑아내면 네가 말하는 그 당기는 느낌도 사라져.”

소영은 나무 창살을 빠져나가며 대답했다.


“그때까지 얌전히 주는 고기나 먹고 있어.”


우리의 기둥을 다시 칡넝쿨로 단단히 묶어 봉쇄했다. 늑대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는 듯하더니, 이내 눈을 감고 깊은 회복의 수면 속으로 빠져들었다.


소영은 공터 중앙에 서서 핏물이 묻은 손을 응시했다. 심장이 서서히 정상 박동을 되찾고 있었다.


환자의 상태는 호전되고 있다. 식량은 어제 가져온 거대한 물소 고기가 마 자루 안에 가득 남아 있으니 최소 이삼 일은 버틸 수 있을 터였다. 문제는 그녀 자신의 '도구’였다.


그녀의 시선이 오두막 안의 선반을 향했다.


어깨의 상처를 봉합하는 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야생의 포식자가 지닌 회복력을 감안하면 며칠 뒤 실밥을 뽑고 근육의 유착 상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강력한 저항이 발생할 것이다. 뼈칼은 날카롭지만 마취가 없다면 늑대의 발버둥을 제어할 길이 없다.


‘엘프의 마취액. 수위가 너무 낮아.’

소영은 피 묻은 천 조각들을 오두막 한구석의 빈 통에 던져 넣었다.


증류주 병을 다시 선반에 올려놓고, 옆에 놓인 수정 유리병을 집어 들었다. 다시 코르크 마개를 열어 그 무겁고 달콤한 수면제의 냄새를 들이마셨다.


‘이 냄새… 단순히 풀이나 꽃의 향기가 아니야. 꿀이나 수액이 농축된 듯한 점성. 그리고 알코올로 성분을 추출했을 때 날아가지 않는 지독한 휘발성. 주변 식생을 무턱대고 씹어볼 게 아니라, 이 냄새와 유사한 성분을 분비하는 특정 식물 군락이나 벌레의 서식지를 찾아야 해.’


소영은 유리병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허리춤에 찬 뼈칼의 자루를 어루만졌다.


환자의 식사를 해결했으니, 이제 의사의 도구를 조달해야 할 차례였다. 그녀의 발걸음이 다시 오두막 밖을 향했다. 아침 식사를 기다리고 있던 새끼 여우가 꼬리를 흔들며 그녀의 부츠에 코를 비비적거렸다.


“밥은 조금 이따 먹자, 여우야. 우리 숲으로 소풍 좀 가야겠어.”


소영의 눈동자가 수호석 결계 너머, 아침 안개가 아직 걷히지 않은 경계림의 짙은 어둠 쪽을 향해 서늘하게 빛났다. 생존을 넘어선, 확장을 위한 탐색이 다시 시작될 참이었다.

🏥 현재 진료소 상태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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