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이세계 숲속 동물병원 (19화: 내 팔을 내어주고 완성한 마취약, 그리고 철제 덫을 끌고 온 두 번째 야간 환자)
햇살이 통나무 벽의 틈새를 타고 들어와 오두막 바닥에 얇은 금빛 선을 그을 무렵, 소영은 화덕 앞의 평평한 나무판자 위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앞에는 깨끗하게 씻어 말린 돌절구, 마을에서 사 온 독한 증류주 병, 그리고 오늘 아침 숲의 깊은 계곡에서 목숨을 걸고 채집해 온 수면 구근의 수액이 담긴 유리병이 놓여 있었다. 수액이 담긴 병의 코르크 마개를 열자마자, 좁은 오두막 안의 공기가 꿀벌 집 한가운데에 머리를 집어넣은 것처럼 달콤하고 무거운 향기로 꽉 들어찼다.
“독이 되지 않을 정도로 희석 비율을 찾아야 해. 내 손가락 마비된 걸 보면 원액은 너무 위험해.”
소영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깨끗한 나뭇가지를 꺾어 그 끝에 수액을 아주 미세하게 묻혔다.
끈적한 점액질 한 방울이 돌절구의 바닥으로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그녀는 그 위에 증류주를 세 모금 정도의 분량으로 부어 넣었다. 투명한 알코올과 탁한 수액이 섞이지 않고 층을 이루자, 그녀는 돌공이를 이용해 두 액체가 완전히 결합될 때까지 한참을 저었다. 알코올의 휘발성 냄새와 수액의 단내가 섞이며 기묘한 화학약품 냄새가 피어올랐다.
완성된 첫 번째 희석액. 동물에게 직접 투여하기 전에 임상 테스트가 필요했다. 오두막 구석에서 자고 있는 새끼 여우를 실험쥐로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소영은 망설임 없이 나뭇가지 끝에 희석액을 찍어, 자신의 왼팔 전완근 안쪽의 연한 피부 위에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싸아아—.
액체가 피부에 닿자마자, 불로 지지는 듯한 알코올의 따가움이 아주 짧게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곧바로 그 자리를 얼음조각을 올려둔 것 같은 강렬한 냉기가 덮어버렸다. 소영은 오른손 손톱으로 액체가 묻은 피부 주변을 꾹 눌러보았다.
감각이 없었다. 피부 겉면뿐만 아니라 그 아래의 근육층까지 감각 신호가 완벽하게 차단되어, 남의 살을 만지는 듯한 기괴한 이물감만이 뇌로 전달되었다.
“이 비율도 안 돼. 이 정도면 소형 동물은 쇼크사하거나 심장 박동이 멈출 수도 있어.”
그녀는 젖은 천으로 팔뚝을 벅벅 닦아내고, 절구에 담긴 용액에 증류주와 끓여 식힌 물을 대량으로 추가했다. 액체의 점성이 물처럼 찰랑거릴 때까지 젓고, 다시 다른 쪽 팔뚝에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이번에는 마비가 천천히 찾아왔다. 꼬집었을 때 둔탁한 압박감은 느껴지지만 날카로운 통증은 지워지는 상태. 국소 마취제로 쓰기에 완벽한 지점이었다. 그녀는 숯검정으로 나무판자 구석에 배합 비율의 근사치를 기호로 그려 넣었다. 물과 알코올의 막대한 양 대비, 수액은 아주 미세한 점 하나. 이 한 병의 원액만으로도 수십 번의 대형 수술을 감당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만들어진 희석 마취액을 빈 병에 옮겨 담고 단단히 밀봉하자, 팽팽했던 신경이 그제야 조금 누그러졌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문틈으로 들어오던 금빛 햇살이 짙은 주황색으로 변해갔다. 해가 저물어가는 숲의 어스름이 결계 밖을 채우기 시작할 때쯤, 소영은 마 자루를 열어 늙은 물소의 붉은 살코기들을 꺼냈다.
“저녁 시간이야.”
그녀는 고깃덩어리들을 품에 안고 밖으로 나섰다.
공터의 거대한 목재 우리 안은 어두웠다. 하지만 창살 너머의 어둠 속에서, 두 개의 황금색 눈동자가 정확히 그녀의 발소리를 추적하며 빛나고 있었다.
스으윽, 탁.
그림자 갈기 늑대가 몸을 일으켜 앞발을 창살 근처에 대고 앉았다. 어제처럼 피 냄새에 이성을 잃고 나무틀에 몸을 들이받거나 미친 듯이 으르렁거리는 행동은 없었다. 짐승의 거대한 흉곽이 규칙적으로 부풀었다 꺼지며, 코끝으로 무거운 콧김만을 뿜어내고 있을 뿐이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엮는 자여.)
늑대의 텔레파시는 낮고 묵직했다. 그 안에는 고기에 대한 맹렬한 갈망이 소용돌이치고 있었지만, 철창이라는 물리적 한계와 소영이라는 치유자의 시선 앞에서 철저하게 본능을 억누르는 이지적인 투쟁이 담겨 있었다.
“얌전하네. 어제 배운 규칙을 잊어버리진 않았나 보지.”
소영은 창살 틈새로 고깃덩어리들을 밀어 넣어 주었다.
늑대는 턱을 벌려 고기를 받아 물었다. 뼈를 부수고 근육을 찢는 야만적인 소리가 공터를 울렸지만, 짐승의 시선은 고기를 뜯는 와중에도 이따금씩 소영의 얼굴을 향해 예의를 갖추듯 머물렀다. 식사가 끝난 뒤, 늑대는 입가에 묻은 피를 긴 혀로 핥아내고는 창살 쪽으로 자신의 거대한 왼쪽 어깨를 스윽 들이밀었다.
치료를 위해 환부를 내어주는, 완벽한 복종의 자세였다.
소영은 창살 사이로 양팔을 집어넣었다. 짐승의 체온이 훅 끼쳐왔다. 두꺼운 무명천 붕대를 조심스럽게 들추고, 마흔다섯 바늘을 꿰매어 놓은 절개선의 상태를 확인했다.
진물은 멈춰 있었고, 실이 파고든 자리 주변으로 붉은 새살이 단단하게 엉겨 붙기 시작하고 있었다. 엘프의 이슬 자두를 먹인 것도 아닌데, 이 압도적인 포식자의 신진대사는 인간의 상식을 벗어난 속도로 파괴된 근막을 융합시키고 있었다.
“염증도 없고 유착도 잘 되고 있어. 모레쯤이면 실을 절반 정도는 뽑아도 되겠다.”
(가려움이 뼈를 긁는다. 하지만 어제의 그 불타는 물(알코올)을 붓지 않는다면 참을 수 있지.)
늑대의 파동에 아주 미세한 피로감이 섞여 있었다. 소영은 피식 웃으며, 늑대의 목덜미 부근, 갈기가 돋아나지 않은 부드러운 털 사이를 손가락으로 살살 긁어주었다. 개과 동물들이 본능적으로 안도감을 느끼는 부위. 늑대의 귀가 뒤로 살짝 젖혀지며, 목구멍 깊은 곳에서 기분 좋은 울림이 작게 새어 나왔다.
“다 나으면 맘껏 뛰게 해 줄 테니까, 그때까지는 가려워도 참아.”
그녀는 붕대를 다시 단단히 덮어주고 우리에서 손을 뺐다. 환자의 안정적인 회복 궤도는 외과의에게 있어 가장 큰 심리적 보상이었다. 그녀는 빈 그릇들을 챙겨 들고, 어둠이 완전히 깔린 오두막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밤이 깊어졌다.
수호석의 결계가 만들어낸 투명한 반구 안쪽은 우주 공간처럼 적막했다. 화덕의 불씨를 흙으로 덮어 끄자, 오두막 내부는 완벽한 칠흑 속에 잠겼다. 소영은 튜닉의 먼지를 털어내고 양털 침구 위로 몸을 눕혔다. 등허리를 푹신하게 감싸는 양털의 질감이 긴장했던 근육을 노곤하게 녹여내렸다.
새끼 여우가 익숙하게 그녀의 무릎 뒤쪽 공간을 파고들어 둥글게 몸을 말았다.
‘마취액도 구했고, 늑대 밥도 줬고. 내일은 진찰용 테이블 겉면을 사포질하듯 다듬어야겠다. 가시가 박히면 곤란하니까….’
의식이 서서히 수면의 심연을 향해 무거워지며 밑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을 때였다.
바스락.
아주 미세한 마찰음.
바람이 나뭇잎을 굴리는 소리일 수도 있었다. 소영은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결계 안쪽은 절대적인 안전 구역이다. 어떤 포식자도, 어떤 마수도 이 안으로 악의를 품고 들어올 수는 없다.
찌직, 바스스. 끼이잉….
하지만 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조금씩, 오두막의 문 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나뭇잎이 쓸리는 소리 사이로, 쇳덩이가 흙바닥에 부딪히며 끌리는 듯한 이질적인 금속음과, 아주 작고 날카로운 짐승의 앓는 소리가 섞여 들었다.
소영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녀의 무릎 뒤에서 자고 있던 새끼 여우도 이미 고개를 들고 귀를 문 쪽으로 바짝 기울이고 있었다. 여우의 목덜미 털은 서 있지 않았다. 경계나 공포가 아니라, 순수한 의아함이었다.
“소리가 나….”
소영은 침구에서 몸을 일으켰다. 숨소리를 죽이고 고막을 활짝 열었다.
“포식자가 아니라, 도움을 청하는 소리 같아.”
엘프가 말했던 수호석의 성질. 살의를 가진 포식자의 눈에는 이곳이 텅 빈 늪이나 죽은 바위로 보이지만, '상처 입고 도움을 청하려는 생명’에게는 이 결계의 문턱이 열려 있다는 그 기만적인 마법의 법칙. 밖에서 나는 소리는 명백히 그 조건에 부합하는 연약한 존재의 움직임이었다.
그녀는 어둠 속을 더듬어, 머리맡에 두었던 작은 기름 램프와 부싯돌을 집어 들었다.
부싯돌을 치자 불꽃이 심지에 옮겨붙으며, 노란빛이 오두막 안을 원형으로 밀어내며 밝혔다. 그녀는 램프의 손잡이를 쥐고, 허리춤에 뼈칼이 매달려 있는 것을 확인한 뒤 맨발에 부츠를 구겨 신고 문으로 다가갔다.
문을 고정하고 있던 돌을 밀어내고, 가죽 경첩 문을 조심스럽게 당겼다.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밤공기가 밀려왔다. 소영은 램프를 가슴 높이로 들어 올려, 오두막 앞 공터의 어둠 속으로 빛을 던졌다. 늑대의 우리는 고요했다. 거대한 맹수는 이 정도의 작은 기척에는 관심조차 없다는 듯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공터의 가장자리, 자신이 숯으로 짐승의 발자국을 그려 세워둔 '동물병원’의 나무 간판 쪽을 향했다.
빛의 테두리 끝자락, 간판의 기둥 아래에 무언가가 웅크리고 있었다.
몸집은 커다란 다람쥐나 족제비 정도로 작았다. 달빛을 받은 털은 은회색이었고, 등줄기를 따라 푸른빛을 내는 작은 이끼 같은 포자들이 기생하듯 자라나 있었다. 이 숲의 고유한 마력 생물인 듯했다.
그러나 소영의 시선을 단번에 잡아끈 것은 짐승의 털 색깔이 아니었다.
짐승의 오른쪽 뒷다리. 그 가느다란 발목을 억센 이빨처럼 꽉 물고 있는 붉게 녹슨 무쇠 덫이었다.
인간들이 놓는 전형적인 톱니바퀴형 철제 올무. 짐승은 덫에 걸린 채로 쇠사슬과 땅에 박혀 있던 말뚝 주변의 흙을 미친 듯이 파헤쳐, 결국 말뚝째로 땅에서 뽑아내어 여기까지 질질 끌고 온 모양이었다. 짐승이 숨을 헐떡일 때마다 쇠사슬이 부딪히며 짤그랑 소리를 냈다.
발목의 피부는 톱니에 찢겨져 뼈가 보일 정도로 깊게 파여 있었고, 피는 이미 검게 굳어 다리의 털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었다.
짐승은 램프 불빛이 자신을 비추자, 겁에 질린 듯 몸을 동그랗게 말고 덫을 끄는 다리를 가슴 쪽으로 끌어당기며 부들부들 떨었다.
(아파… 발이 타들어 가. 무서워…)
텔레파시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지능이 파편화된 본능적인 비명만이 파동의 형태로 공기를 타고 흘러왔다. 거대한 늑대의 묵직한 이성이나 여우들의 또렷한 언어와는 달리, 오직 고통과 도주 본능만이 점철된 연약한 짐승의 외침이었다.
“괜찮아. 내가 풀어줄게.”
소영은 램프를 바닥에 내려놓고, 무릎을 굽힌 채 짐승의 시야에 맞춰 자세를 완전히 낮추었다.
이대로 두면 발목 아래로 피가 통하지 않아 완벽하게 괴사할 것이고, 결국 다리를 절단해야만 살 수 있을 것이다. 소영은 양손바닥을 보여주며 짐승을 향해 아주 느리게 기어갔다.
은회색 짐승은 소영의 다가오는 그림자를 보고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소영의 머릿속에서 뻗어 나가는 ‘시원한 물’, ‘풀려난 발’, '따뜻한 굴’의 이미지가 짐승의 공포를 아주 미세하게 덮어 눌렀다. 짐승은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눈을 꼭 감았다.
소영의 손이 차갑고 거친 녹슨 무쇠 덫에 닿았다.
장력이 엄청났다. 짐승의 얇은 발목뼈가 부러지지 않은 것이 기적일 정도였다. 그녀는 두 손으로 덫의 양쪽 스프링 레버를 잡고, 상체의 체중을 온전히 실어 아래로 강하게 내리눌렀다.
“으으윽…!”
소영의 입술 사이로 신음이 샜다. 근육이 비명을 질렀고, 덫에 슨 녹이 손바닥을 긁어 상처를 냈지만 그녀는 힘을 풀지 않았다.
끼기기긱— 턱!
마침내 무거운 쇳소리와 함께 덫의 톱니 입이 벌어졌다.
짐승은 발목을 구속하던 압박이 풀리자마자 반사적으로 뒷다리를 빼냈다. 피투성이가 된 발목이 허공에서 달랑거렸다. 소영은 발로 덫을 멀리 차버리고, 자신의 튜닉 밑단을 찢어 짐승의 피 나는 발목을 재빨리, 그러나 부드럽게 감쌌다.
“놀랐지. 이제 쇠 이빨은 없어.”
소영이 낮게 속삭이며 짐승의 은회색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짐승의 거친 호흡이 조금씩 잦아들며, 찢어진 천 너머로 소영의 체온을 느끼려는 듯 그녀의 손바닥에 자신의 차가운 코를 기댔다.
어둠이 내린 경계림 한가운데, 짐승의 피 냄새를 맡고 찾아온 포식자의 눈앞에서 보란 듯이, 그녀의 두 번째 야간 응급 진료가 조용히, 그러나 완벽하게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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