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이세계 숲속 동물병원 (21화: 숲의 평화와 인간의 악의)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소영의 의식을 타격한 것은 등허리를 파고드는 서늘한 냉기였다.
어젯밤의 응급 수술 직후, 그녀는 은회색 담비의 저체온증을 막기 위해 자신이 덮고 자야 할 두꺼운 양털 침구의 4분의 1을 가차 없이 잘라내 버렸다. 잘려 나간 단면으로 캔버스 천의 거친 올이 풀려 있었고, 그 틈새로 스며든 새벽의 한기가 얇은 튜닉 하나만 걸친 그녀의 척추를 밤새도록 집요하게 핥고 지나간 탓이었다.
“으윽….”
소영은 몸을 뒤척이며 신음을 흘렸다.
오른쪽 어깨와 양쪽 전완근에서 불로 지지는 듯한 뻐근한 근육통이 방사형으로 퍼져나갔다. 어젯밤, 장력이 팽팽한 무쇠 덫을 억지로 벌리느라 팔의 미세 근육 섬유들이 비명을 지르며 파열된 흔적이었다. 그녀는 뻑뻑하게 굳어버린 손가락 관절을 쥐었다 폈다 하며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오두막의 통나무 벽 틈새로 아침의 밝은 햇살이 칼날처럼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허공에 떠다니는 먼지 입자들이 빛의 기둥 안에서 어지럽게 춤을 췄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건초 더미 쪽을 향했다.
잘려 나간 양털 모포의 더미 안에서, 두 개의 작은 생명체가 여전히 엉켜 있었다. 붉은 새끼 여우는 배를 하늘로 향한 채 네 다리를 벌리고 태평하게 자고 있었고, 그 옆구리에 바짝 붙어 있던 은회색 담비는 소영이 몸을 일으키는 기척에 이미 눈을 번쩍 뜨고 있었다.
담비의 까만 눈동자가 소영을 향해 흔들렸다.
(…무서워. 갇혔어. 다리가 안 움직여.)
어젯밤처럼 공포에 질린 비명은 아니었지만, 극도의 혼란이 담긴 파편화된 파동이 머릿속을 스쳤다. 담비는 도망치려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마취액의 기운이 완전히 빠져나가지 않아 하반신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고, 나뭇가지로 덧대어 놓은 묵직한 부목이 뒷다리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봉쇄하고 있었다.
“움직이지 마. 뼈에 금이 갔으니까.”
소영은 쉰 목소리로 속삭이며 침구에서 빠져나왔다.
가까이 다가가 양털 모포를 살짝 들추자, 담비가 움찔하며 여우의 등 뒤로 파고들려 했다. 소영은 담비의 오른쪽 뒷발바닥 패드를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눌렀다 뗐다. 창백했던 패드의 색깔이 손을 떼자마자 1초 안에 붉은색으로 돌아왔다. 모세혈관의 혈류량이 정상으로 회복되었다는 증거였다.
“다행히 괴사는 막았네. 체온도 정상이고.”
소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쉴 틈은 없었다.
좁은 오두막 안의 공기는 어젯밤 흘린 피의 비린내와 알코올 냄새, 그리고 수면 구근의 단내가 섞여 구역질이 날 정도로 탁했다. 바닥의 흙에는 검붉은 핏자국이 그대로 말라붙어 파리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완벽한 감염원이 된다.
그녀는 문을 활짝 열어젖혀 환기를 시키고, 납작한 돌을 집어 들어 피가 묻은 흙바닥을 박박 긁어내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사아악.
오염된 흙을 파내어 통에 담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노동. 굳어 있던 팔 근육이 비명을 질렀지만, 오히려 이 딱딱한 움직임이 수면 관성을 밀어내고 그녀의 뇌를 완벽한 '근무 모드’로 전환시켰다. 파낸 흙을 오두막 뒤편의 구덩이에 내다 버리고, 개울에서 퍼 온 마른 모래로 빈자리를 채워 다진 뒤 알코올을 흩뿌려 소독을 마쳤다.
그제야 오두막 안은 평소의 마른먼지 냄새를 되찾았다.
“이제 큰 놈 밥 줄 차례인가.”
소영은 이마의 땀을 훔치며 밖으로 나섰다.
오두막 앞 공터는 눈이 부시게 밝았다. 수호석 결계의 보이지 않는 막 위로 아침 이슬이 맺혔다 증발하며 미세한 무지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평화로운 풍경의 한가운데, 거대한 목재 우리 안에서 그림자 갈기 늑대가 벌써부터 창살 앞까지 나와 앉아 있었다.
어제저녁에 포만감을 경험한 짐승은 소영의 발소리를 완벽한 '배식의 신호’로 인식하고 있었다. 황금색 눈동자가 소영의 빈손을 확인하고는 미세하게 실망감을 표출하듯 가늘어졌다.
(…고기의 냄새가 나지 않는군.)
“기다려. 아침부터 굶길 생각 없으니까.”
소영은 피식 웃으며, 어제 물소 고기를 담아두었던 거대한 마 자루를 오두막의 처마 밑 그늘에서 끌어왔다. 자루를 열자, 훅 끼치는 강렬한 철분 냄새와 함께 약간의 산패가 시작되려는 시큼한 냄새가 섞여 났다. 이계의 서늘한 기온 덕분에 완전히 썩지는 않았지만, 냉장고가 없는 환경에서 생고기의 유통기한은 길어야 이삼 일이었다.
“이 고기, 내일까지 다 먹어치워야겠어. 안 그러면 상해서 배탈 날 테니까.”
그녀는 무쇠 식칼로 물소의 몸통 살코기 덩어리를 큼직하게 썰어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붉은 고기를 우리 창살 틈으로 쑥 밀어 넣어 주었다.
철썩.
고기가 바닥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늑대의 거대한 턱이 다가와 그것을 낚아챘다.
우적, 빠직.
뼈와 근육이 짓이겨지는 소름 끼치는 파열음. 소영은 늑대가 고기를 씹어 넘기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처음에는 식사에 눈이 돌아가 주변을 살피지도 않던 녀석이, 이제는 한 덩어리를 삼킬 때마다 소영과 눈을 마주치며 다음 조각을 기다리는 듯한 여유를 보이고 있었다. 야생의 정점 포식자가 보여주는 기괴한 ‘식사 예절’.
소영은 창살 너머로 두 번째, 세 번째 고깃덩어리를 던져주었다.
“상처 부위 핥지 마. 진물 다 말랐는데 침 묻히면 또 소독해야 하니까.”
(…네가 내 몸에 두른 이 껍데기(붕대) 때문에 혀가 닿지도 않는다.)
늑대는 코웃음을 치듯 콧김을 거칠게 내뿜고는, 마지막 고기 조각을 목구멍 뒤로 꿀꺽 넘겼다. 피 묻은 주둥이를 자신의 앞발에 쓱쓱 문질러 닦는 늑대의 어깨를 보니, 무명천 붕대는 어젯밤에 단단히 묶어둔 그대로 위치를 유지하고 있었다. 부기나 열감은 눈으로 보기에도 확연히 줄어들어 있었다.
늑대의 배식을 마친 소영은 다시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새끼 여우와 자신이 먹을 아침을 준비할 시간이었다. 그녀는 화덕에 불을 지피고, 냄비에 물을 올려 보라색 뿌리와 얇게 저민 육포, 그리고 어제 사 온 후추 가루와 소금을 듬뿍 넣었다. 매콤하고 알싸한 국물이 끓어오르는 냄새가 오두막을 가득 채우자, 잠에서 완전히 깬 새끼 여우가 꼬리를 흔들며 화덕 주변을 맴돌았다.
반면, 양털 모포 아래 웅크린 은회색 담비는 그 냄새에 거부감을 느끼는지 고개를 더 깊숙이 파묻었다.
“초식이나 곤충 식성인가 보네. 고기 냄새를 싫어하는 걸 보니.”
소영은 국자로 스튜를 훌훌 떠먹으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여우에게 물에 씻은 육포 조각을 던져주고, 밖으로 나가 수호석 결계 가장자리의 덤불을 뒤졌다. 연하고 물기가 많은 양치식물 잎사귀 몇 장과 즙이 많은 야생 베리들을 따서 돌아왔다.
작은 나무 그릇에 잎사귀와 베리를 으깨어 담비의 코앞에 밀어 넣어 주었다.
담비는 코를 벌름거리더니, 부러진 뒷다리를 끌면서도 상체를 주욱 내밀어 허겁지겁 과즙을 핥아먹기 시작했다. 찹, 찹, 찹. 작고 거친 혀가 그릇을 비우는 소리가 났다. 영양분이 공급되자, 등줄기를 따라 돋아난 푸른 포자들이 다시 미세한 빛을 띠며 명멸하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친 뒤, 소영은 도구들을 챙겼다.
“자, 이제 드레싱 교체 시간이야.”
그녀는 담비의 목덜미와 엉덩이를 안정적으로 감싸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담비가 작게 발버둥 쳤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소영은 짐승을 품에 안은 채 밖으로 걸어 나가, 어제 만들어둔 가로 2미터짜리 거대한 목재 진찰용 테이블 위에 담비를 내려놓았다.
테이블 위로 햇살이 내리쬐었다.
탁 트인 야외, 그리고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거대한 그림자 갈기 늑대의 존재. 담비는 테이블의 거친 나무 표면 위에 납작 엎드린 채, 늑대를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늑대 역시 턱을 바닥에 댄 채, 황금색 눈동자로 테이블 위의 작은 생명체를 흥미롭다는 듯 관찰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질질 끌려온 고깃덩어리군. 작고 연약해.)
늑대의 파동이 공기를 가르며 소영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었다. 그 파동은 살의나 식욕이라기보다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 인간의 손에 의해 묶여 있는 새로운 '장난감’을 바라보는 포식자의 나른한 호기심에 가까웠다.
“고깃덩어리 아니야. 2번 병상 환자지.”
소영은 늑대를 향해 쏘아붙이고는, 담비의 시야를 자신의 등판으로 가려주었다. 담비가 시각적인 공포에서 벗어나도록 배려하는 외과의의 위치 선정.
소영은 조심스럽게 담비의 오른쪽 뒷발목을 감싸고 있던 무명천과 부목을 풀었다.
어젯밤 쑥 반죽을 덮어두었던 상처는 피가 완전히 멎어 있었다. 봉합선을 따라 짙은 초록색으로 말라붙은 쑥 반죽이 천연 밴드 역할을 하며 환부를 보호하고 있었다. 소영은 끓여서 식힌 물을 천에 적셔 굳어버린 쑥 반죽의 가장자리를 살살 불려가며 닦아냈다.
“으르릉….”
상처를 건드리자 담비가 짧게 이빨을 드러냈지만, 물지는 않았다. 부기를 확인하고, 덫의 압박으로 인해 멍이 들었던 주변 피부의 색조를 꼼꼼히 살폈다.
“감염 징후 없음. 붓기도 이 정도면 양호해.”
그녀는 다시 새로운 쑥 가루를 물에 개어 상처 위에 두껍게 도포했다. 깨끗한 헝겊으로 나뭇가지 부목을 양옆에 대고 다시 팽팽하게 감아올렸다. 어젯밤처럼 허혈이 오지 않도록, 발바닥의 색깔이 변하지 않는 선에서 장력을 완벽하게 조절했다.
처치를 끝낸 뒤, 소영은 담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문제는, 널 어디다 두느냐인데….”
그녀의 시선이 다시금 공터를 훑었다. 늑대처럼 튼튼하고 거대한 우리가 이 녀석에게는 필요 없었다. 오히려 너무 넓은 공간은 이 작은 피식자에게 극도의 불안감만을 조성할 뿐이다.
“좁고 어둡고 안전한 굴을 만들어줘야겠어.”
소영은 테이블 위에 담비를 그대로 둔 채, 톱과 망치, 그리고 굵은 쇠못을 챙겨 들었다.
어제 진찰용 테이블을 만들고 남은 통나무와 잔가지들이 마당 구석에 쌓여 있었다. 그녀는 사람 팔뚝만 한 길이의 곧은 나뭇가지들을 골라내어 톱으로 길이를 맞추기 시작했다.
서걱, 사각. 서걱, 사각.
이계의 억센 섬유질을 끊어내는 쇠톱의 마찰음이 다시 한번 결계 안의 정적을 찢었다. 소영의 이마에서 다시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그녀는 땀이 눈을 찌르는 것을 개의치 않고 집중했다. 이번에는 못을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나뭇가지에 홈을 파서 서로 얽히게 맞물리는 방식으로 촘촘한 나무 상자를 짰다.
가로 50센티미터, 세로 30센티미터 남짓한 직사각형의 소형 케이지. 앞면에는 얇은 잔가지들을 창살처럼 덧대었고, 바닥에는 흙 대신 두꺼운 나무판자를 깔았다. 통풍이 되면서도 시야가 제한되어 피식자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구조였다.
“휴우… 끝났다.”
한 시간의 망치질 끝에 엉성하지만 튼튼한 케이지가 완성되었다. 소영은 오두막 안에서 아까 잘라두었던 양털 침구의 파편을 가져와 케이지 바닥에 푹신하게 깔아주었다. 그리고 진찰 테이블 위에서 잔뜩 긴장해 있던 담비를 들어 올려 그 안으로 밀어 넣었다.
담비는 양털의 냄새를 맡자마자 케이지의 가장 깊숙한 구석으로 파고들더니, 꼬리로 코를 감싼 채 완벽하게 웅크렸다.
(…어두워. 따뜻해. 안 무서워.)
담비의 텔레파시 파동이 톱날처럼 거칠었던 경계를 허물고, 이불 솜처럼 몽글몽글하게 풀려나가는 것이 소영의 뇌리로 직접 전해졌다.
“그래. 뼈 붙을 때까지 거기가 네 전용 병실이야.”
소영은 케이지를 들어 올려, 오두막 처마 밑의 비가 들이치지 않고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진 선반 위에 올려두었다. 늑대의 시선이 닿지 않는 안전한 각도였다.
소영은 망치를 바닥에 내려놓고, 허리에 양손을 얹은 채 등과 허리를 뒤로 한껏 젖혔다.
척추 마디마디가 비명을 질렀지만, 그녀의 입가에는 실성한 듯한 웃음이 번져 있었다. 오두막 앞 공터는 더 이상 조난자의 캠프가 아니었다. 거대한 늑대의 격리장, 진찰용 테이블, 그리고 소형 동물을 위한 집중 치료 케이지까지. 나무껍질과 무쇠로 짜 맞춘 그녀만의 왕국이 물리적인 형태를 완벽하게 갖추어가고 있었다.
“좋아, 얼추 병원 꼴은 갖췄어.”
그녀는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고는, 바닥에 널브러진 톱밥과 나뭇가지 부스러기들을 발로 대충 한쪽으로 밀어 정리했다.
그때, 소영의 시야 구석으로 이질적인 물건 하나가 들어왔다.
어젯밤, 담비의 발목에서 떼어내어 마당 구석에 대충 발로 차두었던 붉게 녹슨 철제 덫이었다.
소영의 미소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녀는 덫 쪽으로 걸음을 옮겨, 무거운 무쇠 덩어리를 양손으로 들어 올렸다. 밝은 햇빛 아래서 보는 덫의 형태는 어둠 속에서 보았을 때보다 훨씬 더 기괴하고 폭력적이었다.
가로세로 한 뼘이 훌쩍 넘는 거대한 크기. 톱니바퀴의 두께와 스프링의 장력을 고려했을 때, 이건 절대 담비나 토끼 같은 소형 동물을 잡기 위한 물건가 아닌, 최소한 성체 멧돼지나, 그림자 갈기 늑대 정도의 덩치를 가진 거대 맹수의 다리를 꺾어버리기 위해 특수하게 제작된 대형 함정. 운 나쁘게 그 위를 지나가던 담비가 스프링을 밟는 바람에 발목이 박살 난 것일 뿐.
“이런 무식한 걸 누가, 왜 이 숲에 설치한 거지?”
소영은 덫에 연결된 굵은 쇠사슬과, 끝부분에 매달려 있던 나무 말뚝을 유심히 살폈다. 말뚝의 단면은 도끼로 거칠게 찍어 깎아낸 흔적이 선명했다. 명백한 '인간’의 도구였다.
마을의 주점 주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무꾼들도 해가 지기 전에는 무조건 밖으로 나와. 밤이 되면 눈알이 여러 개 달린 짐승이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파다하거든. 안쪽 깊숙이는 들어가지 않는 게 상책이야.’
인간들은 경계림의 외곽만을 맴돈다고 했다. 엘프들 역시 수호석이 있는 숲의 중앙까지는 잘 접근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무거운 덫을 들고 숲의 깊은 곳, 엘프의 수호석이 있는 근처까지 접근한 자는 누구란 말인가. 전문적인 마수 사냥꾼? 아니면 마을의 밀렵꾼들?
이 덫의 존재는 단순한 우연이 아닐지도 몰랐다. 인간들의 활동 반경이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이 숲을 향해 뻗어오고 있다는 증거. 그건 이 완벽해 보이는 요새에 도사린 또 다른 형태의 치명적인 위협이었다.
소영의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짐승의 피 냄새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서늘한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동족인 인간이 만들어낸 악의. 그것이 자연의 야만성보다 훨씬 더 끔찍하고 불쾌하게 다가왔다.
“이 근처를 순찰해야겠어.”
소영은 덫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중얼거렸다. 수호석은 오두막을 가려주지만, 만약 덫이 결계의 바로 턱밑에 여러 개 설치되어 있다면 환자들이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죽어 나갈 것이다.
그녀가 뼈칼의 자루를 어루만지며 숲의 경계를 향해 시선을 던질 때였다.
결계 밖, 양치식물이 무성한 덤불 속에서 부스럭거리는 기척이 났다. 소영은 반사적으로 몸을 낮추고 숨을 죽였다. 새끼 여우가 꼬리를 흔들며 그쪽을 향해 짖었다.
양치식물의 잎사귀가 갈라지며, 붉은 털의 어미 여우가 우아한 걸음걸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숲의 공기가 탁해졌다.)
어미 여우는 결계의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코를 벌름거리며 허공의 냄새를 깊게 빨아들였다. 녀석의 호박색 눈동자가 선반 위에 올려진 담비의 케이지와, 마당 구석에 던져진 붉은 녹의 철제 덫을 차례대로 훑어 내렸다.
(…두 발로 걷는 자들이 철을 씹어뱉은 흔적. 밤것들의 피 냄새에 섞여, 기분 나쁜 쇳내가 숲의 흙을 더럽히고 있군.)
어미 여우가 덫을 향해 다가가 앞발로 가볍게 툭 건드렸다. 짤그랑, 하는 불쾌한 소리가 났다. 녀석의 파동에는 명백한 적대감과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당신도 이걸 봤군요.”
소영은 뼈칼에서 손을 떼고 어미 여우를 향해 다가갔다.
“이런 덫이 숲에 자주 깔리나요?”
(아니다. 저 무거운 철은 숲의 바깥, 인간의 마을 가장자리에서나 볼 수 있는 것. 나무의 그림자가 짙은 이곳까지 저런 냄새나는 물건이 들어온 것은 내가 눈을 뜬 이후로 처음이다.)
어미 여우가 고개를 들어 소영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너는 살을 엮는 자. 하지만 저 철의 이빨을 만든 것도 너와 같은 두 발의 짐승들이다. 숲이 요동치고 있다. 동쪽에서 쇠 냄새를 풍기는 자들이 점점 안쪽으로 발자국을 찍고 있고, 서쪽의 깊은 늪에서는 굶주린 어둠의 것들이 밀려 올라오고 있지. 이 좁은 빈터의 안전도 언제까지 유지될지 장담할 수 없다.)
경고. 이 숲의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는 명확한 생태학적 브리핑이었다.
소영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녀는 구조를 기다리는 이방인이 아니라, 이제 이 병원의 주인이었다. 환자들을 지키고 자신의 영토를 방어하려면, 결계 안에 숨어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 철의 이빨을 설치한 놈들이 어디서 오는지,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요?”
소영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오두막 벽에 기대어 둔 묵직한 무쇠 망치를 집어 들었다. 야생의 폭력에는 마취액과 바늘로 맞섰지만, 인간의 폭력에는 물리적인 해체가 필요했다.
어미 여우가 코를 한 번 크게 울리더니, 꼬리로 결계 밖의 동쪽, 빽빽한 나무들이 늘어선 방향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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