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이세계 숲속 동물병원 (23화: 야생 감자 스튜의 온기와 맹수의 절대적인 신뢰)
마 자루의 끈을 풀자, 흙투성이가 된 야생 감자들이 바닥으로 후들후들 쏟아져 내렸다.
소영은 오두막 한구석에 쭈그려 앉아, 양동이에 떠 온 개울물에 작물들을 쏟아부었다. 차가운 물속에서 둥근 덩어리들을 양손으로 박박 문질러 씻었다. 짙은 갈색의 진흙이 씻겨 나가면서 물은 금세 탁한 흙탕물로 변했고, 작물의 옅은 황갈색 껍질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손끝에 닿는 단단하고 묵직한 질감, 그리고 공기 중으로 피어오르는 비릿하면서도 고소한 흙내음.
“진짜 감자랑 다를 게 없네.”
그녀는 깨끗해진 감자 하나를 건져내어 도마 대용 나무판자 위에 올렸다. 엘프의 뼈칼을 짧게 쥐고 껍질을 깎아내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칼날이 매끄럽게 표면을 밀고 나갈 때마다 뽀얀 속살이 드러났고, 미세하게 배어 나온 전분질이 그녀의 손가락 사이를 진득하게 채웠다.
화덕 안에서는 붉은 장작불이 타닥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소영은 무쇠 냄비에 물을 절반쯤 채워 불 위에 올렸다.
냄비의 물이 기포를 일으키며 끓어오르기 시작하자, 그녀는 깍둑썰기한 야생 감자들을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이어서, 내일까지 소비하지 않으면 부패가 시작될 늙은 물소의 붉은 살코기 덩어리들을 큼직하게 썰어 함께 투하했다. 시장에서 사 온 거친 소금 한 움큼과 으깬 통후추를 뿌려 넣었다.
이계의 숲에서 끓여내는 첫 번째 정식 스튜였다.
물소 고기에서 우러나온 짙은 육수 위로 기름기가 동동 떴고, 감자에서 빠져나온 전분이 국물을 걸쭉하게 만들며 오두막 안을 묵직한 고기 냄새로 가득 채웠다. 냄비 뚜껑의 틈새로 하얀 수증기가 치익 소리를 내며 뿜어져 나왔다.
그 냄새를 가장 먼저 견디지 못한 것은 새끼 여우였다. 낮잠을 자고 있던 여우가 어느새 다가와 소영의 부츠 위로 앞발을 올리고 낑낑거렸다.
“알았어, 알았어. 다 익었는지 볼 테니까 비켜봐.”
소영은 나무 숟가락으로 국물을 크게 한 번 젓고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 조각 하나를 건져 올렸다. 입으로 호호 불어 열기를 식힌 뒤 앞니로 살짝 베어 물었다.
뜨거운 덩어리가 혀끝을 데일 듯 타격했지만, 곧바로 포슬포슬하게 부서지는 완벽한 탄수화물의 식감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물소 고기의 진한 육즙과 후추의 알싸함이 감자의 속까지 깊숙하게 배어 있었다. 삼키는 순간, 텅 비어 있던 위장이 따뜻한 열량으로 꽉 채워지는 본능적인 안도감이 척추를 타고 퍼져나갔다.
“…감자까지 구했으니 이제 진짜 사람 사는 집 같네.”
그녀는 남은 반쪽을 마저 씹어 삼키며 실소했다. 생존의 최저선에서 벗어나, 이제는 '생활’의 궤도로 진입하고 있음을 알리는 미각적 증명이었다.
소영은 식힌 스튜를 나무 그릇에 덜어 새끼 여우의 코앞에 내려놓았다. 여우는 허겁지겁 고기 조각과 감자를 핥아 먹으며 꼬리를 프로펠러처럼 흔들어댔다.
그녀는 다른 작은 그릇을 꺼내, 삶아진 감자 몇 개를 나무 숟가락으로 완전히 으깨어 부드러운 매시드 포테이토 상태로 만들었다. 거기에 야생 베리의 즙을 조금 섞어 넣었다. 어젯밤 수술을 마친 은회색 담비를 위한 특식이었다.
처마 밑의 케이지 안으로 그릇을 밀어 넣어 주자, 어두운 구석에 웅크려 있던 담비가 코를 킁킁거리며 다가왔다. 고기 냄새가 섞이지 않은 달콤하고 부드러운 전분질. 담비는 다친 뒷다리를 조심스럽게 끌며 엎드린 채, 작은 혀를 날름거리며 순식간에 그릇을 비워냈다. 푸른 포자의 빛이 한결 안정적으로 점멸하는 것이 보였다.
“잘 먹으니 다행이네.”
소영은 빈 그릇을 회수하며 중얼거렸다. 식량은 풍족해졌지만, 문제는 보존이었다.
‘이 많은 감자를 생으로 두면 한 달도 못 가서 싹이 트거나 썩어버릴 거야. 오두막 뒤편에 깊게 구덩이를 파서 서늘한 지하 저장고를 만들거나, 아니면 얇게 썰어서 화덕의 잔열과 햇빛에 바싹 말려 건조 식량으로 가공해야겠어. 내일 당장 삽질부터 시작해야지.’
미래의 생존 계획을 세우며, 소영은 가장 큰 무쇠 냄비째로 스튜를 들고 오두막 밖으로 나섰다.
해가 완전히 저물어, 숲은 짙은 청남색의 어둠 속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수호석 결계 안의 공기는 서늘하게 식어 있었고, 낮에 세워둔 하얀 백자작나무 표지판만이 어둠 속에서 기이하게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거대한 목재 우리 앞. 소영은 냄비에 담긴 대량의 고기와 국물, 그리고 감자 덩어리들을 늑대의 밥그릇 대용으로 쓰이는 넓은 나무통에 쏟아부었다.
늑대가 슬그머니 다가와 냄새를 맡았다. 날고기에서 나는 비릿한 피 냄새 대신, 불에 익혀진 고기와 낯선 식물의 향기가 올라왔다. 짐승의 콧잔등이 미세하게 주름졌다.
“편식하지 말고 먹어. 회복하려면 탄수화물도 필요하니까.”
늑대는 가볍게 콧김을 뿜어내고는, 거대한 턱을 벌려 스튜를 통째로 퍼마시기 시작했다. 날고기를 찢을 때의 야만적인 소리는 덜했지만, 걸쭉한 국물과 감자가 짐승의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묵직한 소리가 공터를 울렸다. 압도적인 열량 공급 앞에서는 정점 포식자의 식성마저 치유자의 통제에 순응하고 있었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소영은 옆에 서서 기다렸다. 늑대가 긴 혀로 입가를 닦아내며 건초 위로 다시 엎드리자, 그녀는 빈 통을 치우고 손에 들고 있던 램프를 우리 가까이에 내려놓았다.
“다 먹었으면, 이제 빚 갚을 시간이야.”
소영은 앞치마 주머니에서 작고 둥글게 깎은 엘프의 뼈 탐침과, 날이 바짝 선 뼈칼, 그리고 증류주가 묻은 헝겊을 꺼냈다.
(…무엇을 하려는가. 그 칼의 냄새는 기억하고 있다.)
늑대의 황금색 눈동자가 소영의 손에 들린 도구들을 응시했다. 파동에는 두려움보다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네 가죽을 뚫고 지나갔던 쇠줄을 뽑아낼 거야.”
소영은 나무 창살 사이로 상체를 밀어 넣었다. 무릎을 꿇고 늑대의 거대한 왼쪽 어깨 옆에 자리를 잡았다. 짐승의 털 사이로 훅 끼쳐오는 후끈한 체온과 야생의 머스크 향이 코끝을 찔렀다.
“상처가 아주 잘 붙었어. 이대로 계속 실을 묶어두면 피부가 실을 이물질로 인식해서 고름이 생길 수 있거든. 일단 절반 정도만, 한 땀 건너 하나씩 끊어서 뽑아낼게. 조금 따가울 거니까 움직이지 마.”
소영은 조심스럽게 무명천 붕대를 벗겨냈다.
어둠 속 램프 불빛 아래 드러난 거대한 열상. 마흔다섯 바늘을 꿰매어 놓은 자국은 징그러웠지만 훌륭하게 아물어 있었다. 절개선을 따라 피와 진물이 굳어 만들어진 딱지들이 두껍게 자리 잡고 있었고, 그 딱지들을 뚫고 나온 무명실들이 피부를 단단하게 움켜쥐고 있었다. 부기는 완전히 빠져 있었고, 주변 피부는 건강한 분홍빛을 띠고 있었다.
“시작한다.”
그녀는 증류주 헝겊으로 상처 부위를 가볍게 닦아내어 딱지의 표면을 살짝 불렸다. 마취액은 가져오지 않았다. 뼈를 맞추거나 살을 도려내는 고통은 아니었거니와, 귀한 수액을 이런 단순 처치에 낭비할 수는 없었다.
소영은 왼손으로 탐침을 쥐고 핀셋처럼 사용해, 상처의 가장 위쪽 끝에 있는 첫 번째 실의 매듭을 살짝 집어당겼다.
피부 표면과 팽팽한 실 사이에 아주 미세한 틈이 생겼다. 그 좁은 틈새로 뼈칼의 날카로운 끝을 미끄러지듯 밀어 넣었다. 피부를 찌르지 않도록 칼날의 각도를 완벽하게 수평으로 유지하는 극도의 집중력.
툭.
칼끝을 위로 살짝 들어 올리자, 질긴 무명실이 아주 가벼운 파열음을 내며 끊어졌다.
“참아.”
그녀는 끊어진 실의 매듭을 쥔 탐침을 위로 부드럽게, 그러나 주저 없이 당겼다. 피부 아래 피하조직을 관통하고 있던 실의 나머지 반쪽이 살과 마찰을 일으키며 쑥 뽑혀 나왔다.
스르륵.
건조하게 말라붙어 있던 피딱지의 파편이 부서지며 실에 딸려 나왔다. 실이 빠져나간 미세한 바늘구멍 사이로 아주 작은 핏방울이 송글 맺혔다.
그 찰나의 마찰통에, 늑대의 거대한 앞다리 근육이 파르르 떨렸다. 짐승의 목구멍 깊은 곳에서 억눌린 으르렁거림이 진동으로 변해 소영의 무릎을 울렸다. 반사적으로 앞발을 쳐들고 소영의 목을 물어뜯고 싶어 하는 신경계의 명령을, 이성이 필사적으로 짓누르고 있는 소리.
소영은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그녀는 뽑아낸 피 묻은 실 조각을 옆의 빈 천에 내려놓고, 바로 다음 실을 건너뛰어 세 번째 실의 매듭을 잡았다.
툭. 스르륵.
두 번째 실이 뽑혔다. 늑대의 호흡이 거칠어지며 코에서 뜨거운 김이 뿜어져 나와 소영의 뺨을 스쳤다.
“힘 빼. 근육에 힘을 주면 실이 안에서 살을 긁어서 더 아파.”
소영의 목소리는 차갑고 기계적이었다. 외과의의 권위가 짐승의 공포를 억누르는 닻의 역할을 해야 했다.
툭. 스르륵.
세 번째 실. 네 번째 실.
동작이 반복될수록 좁은 공기 중에 피 비린내가 아주 옅게 번지기 시작했다. 실이 살을 통과할 때마다 늑대의 척추가 미세하게 움찔거렸지만, 짐승은 끝끝내 고개를 돌려 소영을 위협하지 않았다. 황금색 눈동자만이 자신의 어깨에서 움직이는 소영의 손놀림을 숨죽여 지켜볼 뿐이었다.
열 바늘째를 뽑아냈을 때, 소영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어두운 조명 아래서 칼날을 살갗 바로 위에서 통제하는 것은 시신경과 전완근에 엄청난 부하를 요구했다. 그녀는 잠시 손을 멈추고 허리를 곧게 펴며 숨을 내쉬었다.
(…기이한 감각이다.)
머릿속으로 늑대의 묵직한 파동이 흘러들어왔다. 아픔을 호소하는 비명이 아니었다.
(네가 엮어놓은 쇠줄이 끊어질 때마다, 그곳을 꽉 쥐고 있던 힘이 풀려나간다. 굳었던 피가 틈새를 뚫고 다시 도는 것이 느껴진다.)
소영은 칼을 쥔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픽 웃었다.
“혈액 순환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뜻이야. 피부가 당기는 느낌이 덜해지니까 숨쉬기도 편해질걸.”
그녀는 다시 상체를 숙여 작업을 재개했다.
툭. 스르륵. 툭. 스르륵.
딱딱한 리듬. 피 묻은 무명실 조각들이 천 위에 점차 수북하게 쌓여갔다. 상처 부위를 절반이나 가로지르고 있던 실들이 사라지자, 딱지로 뒤덮였던 거대한 열상 부위가 한결 부드럽게 이완되며 늑대의 어깨 굴곡을 따라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 것이 보였다.
마침내, 스물두 번째 실. 상처의 가장 아래쪽 매듭을 끊고 실을 부드럽게 뽑아냈다.
“끝났어. 나머지 절반은 삼 일 뒤에 마저 뽑을 거야.”
소영은 뼈칼과 탐침을 내려놓고, 증류주가 묻은 헝겊으로 실이 빠져나간 자리에 맺힌 핏방울들을 가볍게 찍어내며 소독했다. 타는 듯한 작열감에 늑대의 피부가 움찔거렸지만, 녀석은 안도의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바닥에 완전히 턱을 눕혔다.
치료의 통증을 묵묵히 견뎌낸 포식자. 오직 치유자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수반되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진짜 잘 참네. 엄살 피우는 대형견들보다 백 배는 나아.”
소영은 무심한 칭찬을 건네며, 무명천 붕대를 다시 가볍게 감아주었다. 이전처럼 근육의 움직임을 봉쇄하기 위해 꽉 조이는 방식이 아니라, 환부를 오염으로부터만 보호할 수 있도록 헐렁하게 묶어주는 드레싱이었다.
우리의 문을 닫고 일어섰을 때, 그녀의 다리가 미세하게 후들거렸다.
긴장이 풀리며 찾아오는 근육의 반동. 밤하늘을 올려다보자 잎사귀 사이로 차가운 달빛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피 묻은 실 조각들이 담긴 천을 말아 쥐고 램프를 들었다.
“잘 자. 내일은 감자 더 많이 줄 테니까.”
(…네 굴로 돌아가라, 엮는 자여. 오늘의 피 냄새는 여기까지다.)
늑대의 평온한 파동을 뒤로 한 채, 소영은 오두막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불씨가 잦아든 화덕, 그 옆에서 평화롭게 잠든 여우와 케이지 안의 담비. 그리고 완벽하게 통제된 야외의 맹수까지. 이 차갑고 야만적인 숲 한가운데서, 그녀의 논리로 구축된 안전한 성역의 밤이 또 하루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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