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이세계 숲속 동물병원 (22화: 밀렵꾼의 덫을 부수고 세운 세 개의 하얀 이정표)
묵직한 무쇠 망치의 나무 자루가 손바닥의 굳은살 위로 거칠게 감겼다.
소영은 오두막의 처마 밑에서 망치를 집어 들고, 반대쪽 어깨에는 텅 빈 마 자루를 걸쳤다. 허리춤에는 엘프의 뼈칼이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수호석의 투명한 경계 너머, 끝없이 펼쳐진 짙은 녹음의 심연을 차갑게 응시하고 있었다.
어미 여우가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 앞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섰다.
“내 병원 반경 1킬로미터 안에는, 쇳조각 하나도 남겨두지 않겠어.”
소영이 낮게 내뱉었다. 다짐이라기보다는 숲을 향한 선전포고에 가까웠다. 어미 여우는 소영의 목소리에 담긴 팽팽한 살기를 읽어낸 듯, 짧게 코를 울리고는 꼬리를 낮게 깐 채 숲의 경계를 향해 미끄러지듯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결계 밖으로 나서는 순간, 먹먹했던 청각이 일순간에 뚫리며 나뭇잎이 부대끼는 파도 소리와 이름 모를 벌레들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습기를 머금은 무거운 공기가 폐부로 훅 밀려 들어왔다.
어미 여우의 역할은 명확했다. 인간의 체취, 마찰유의 냄새, 그리고 부식되어가는 철의 비린내를 추적하는 것.
소영은 여우의 붉은 꼬리를 쫓아 덤불을 헤치며 전진했다. 오 분 남짓 걸었을 무렵, 어미 여우가 거대한 양치식물 군락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앞발로 바닥의 흙을 가볍게 툭툭 쳤다.
(여기에 숨어 있다. 어둠 속에서 피를 맛본 쇠의 냄새.)
소영은 망치를 고쳐 쥐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낙엽과 흙으로 교묘하게 위장된 바닥 한가운데, 톱니바퀴 형태의 강철 덫이 입을 쩍 벌린 채 숨죽이고 있었다. 중앙의 압력판에는 짐승의 발을 유도하기 위해 동물의 지방질 같은 것이 누렇게 발라져 있었다.
소영은 덫의 스프링이 연결된 힌지(경첩) 부분을 눈으로 가늠했다. 두 발을 어깨너비로 벌려 단단히 고정하고, 무쇠 망치를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었다. 어깨의 삼각근과 등 근육이 팽팽하게 수축했다.
“흡!”
짧은 기합과 함께, 허리의 회전력을 이용해 망치를 내리찍었다.
까아앙—!
숲의 소음을 찢어발기는 끔찍한 금속성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망치의 대가리가 덫의 경첩을 정통으로 타격하며 붉은 불꽃이 튀었다. 타격의 반동이 망치 자루를 타고 올라와 소영의 양쪽 손목과 팔꿈치 관절을 찌릿하게 마비시켰다.
한 번의 타격으로는 부서지지 않았다. 인간의 악의는 질겼다.
소영은 입술을 꽉 깨물고 두 번째, 세 번째 타격을 연달아 내리꽂았다.
깡! 깡! 우지직!
세 번째 타격이 꽂히는 순간, 덫을 지탱하고 있던 두꺼운 스프링 핀이 구부러지며 튕겨 나갔다. 살을 찢기 위해 팽팽하게 물려 있던 톱니바퀴의 장력이 힘없이 풀리며, 철제 올무가 맥없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완벽한 기계적 파괴.
소영은 숨을 헐떡이며 부서진 철조각을 발로 멀리 차버렸다.
“다음.”
망치질의 진동으로 얼얼해진 손아귀를 쥐었다 폈다 하며, 그녀는 다시 어미 여우의 뒤를 따랐다.
한 시간 동안 숲을 반경 1킬로미터 내외로 빙글빙글 돌며 수색을 이어나갔다. 짐승의 이동 경로가 겹치는 좁은 길목이나 옹달샘 근처의 물가에서, 소영은 무려 네 개의 덫을 추가로 발견했다. 그중 하나는 이미 작동하여 짐승의 다리를 자르고 지나간 듯 검게 썩은 피가 묻어 있었고, 또 다른 하나는 반쯤 흙에 파묻힌 채 녹슬어 있었다.
그녀는 발견하는 족족 망치를 휘둘러 스프링을 박살 내고 톱니를 휘어버렸다. 인간의 함정을 해체하는 과정은 혹독한 육체노동이었지만, 부서진 쇳조각이 바닥에 나뒹굴 때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는 서늘한 정복감이 피어올랐다.
다섯 번째 덫을 완전히 박살 낸 뒤, 소영은 이마에 맺힌 땀을 소매로 닦아내며 거친 숨을 골랐다.
어깨가 끊어질 듯 아팠고, 튜닉은 흙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반경 1킬로미터. 이 정도면 오두막을 향해 다가오는 부상당한 짐승들이 인간의 덫에 걸려 2차 피해를 볼 확률은 극적으로 줄어들었다.
“이 근방은 다 치운 것 같네.”
소영이 바위에 기대어 수통의 물을 마시려 할 때였다. 주변을 코로 훑던 어미 여우가 조금 떨어진 완만한 구릉지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피 냄새도, 쇠 냄새도 아니다. 허나 흙 아래에 무언가 잔뜩 묻혀 있는 냄새가 난다. 벌레들도 접근하지 않는 탁한 흙내다.)
여우의 파동에 호기심이 일었다. 육식과 잡식을 병행하는 여우에게는 식욕을 당기지 않는 냄새지만, 생태계의 흐름에서 벗어난 이질적인 밀도감을 감지한 것이었다.
소영은 수통의 마개를 닫고 구릉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빽빽한 침엽수림 사이로 난데없이 볕이 잘 드는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그곳은 숲의 다른 지형과는 명백히 달랐다. 사람의 허벅지 높이까지 자라난 넓고 두꺼운 잎사귀들이, 누군가 인위적으로 줄을 맞춰 심어놓은 것처럼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잎의 표면에는 솜털이 빽빽하게 나 있었고, 뿌리 쪽의 흙은 주변보다 유독 부풀어 올라 있었다.
소영은 덤불을 헤치고 들어가 잎사귀 하나를 만져보았다. 진득한 수액 같은 것은 묻어나지 않았다.
“야생 작물인가?”
그녀는 무릎을 꿇고 뼈칼을 꺼냈다. 부풀어 오른 흙의 표면을 칼끝으로 푹 찌르고는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흙을 파뒤집었다.
서걱, 투둑.
잔뿌리들이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검은 흙더미 속에서 주먹만 한 크기의 덩어리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소영의 눈이 커졌다.
겉껍질은 옅은 황갈색이었고, 흙을 대충 털어내자 지구의 감자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울퉁불퉁하고 밀도가 높아 보이는 구황작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뼈칼로 작물 하나를 반으로 갈라보았다. 칼끝에 쩍 하고 들러붙는 뽀얀 속살. 단면에서 올라오는 냄새는 완벽한 전분질의 향기였다.
그녀는 손가락 끝으로 하얀 전분즙을 살짝 찍어 혀끝에 댔다. 아리거나 쓴 독성의 맛은 없었다. 생감자 특유의 비릿하고 고소한 흙맛뿐.
“세상에….”
소영은 구릉지 전체를 덮고 있는 군락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계의 짐승들은 생고기를 뜯거나 숲의 마력 열매를 탐할 뿐, 땅을 파서 탄수화물을 캐 먹는 습성은 없는 모양이었다. 인간의 손길조차 닿지 않은 이 숲의 맹점 같은 공간에, 몇 달을 먹고도 남을 엄청난 양의 식량 자원이 자연 상태 그대로 방치되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만 있으면 겨울이 와도 육포 쪼가리나 씹으며 버틸 필요가 없어.”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망치질로 지쳐 있던 근육에 새로운 아드레날린이 돌았다. 그녀는 어깨에 매고 있던 빈 마 자루를 펼쳐 바닥에 내려놓았다.
양손으로 흙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뿌리줄기를 끄집어당길 때마다 감자 모양의 작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딸려 나왔다. 크고 상처 없는 것들만 골라 미친 듯이 자루 안으로 쓸어 담았다. 십 분도 채 되지 않아, 마 자루는 혼자서 간신히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로 묵직하게 부풀어 올랐다.
더 욕심을 부리다가는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숲 한가운데서 고립될 터였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이 장소는 절대 잊어버리면 안 돼.”
소영은 군락지 입구에 서 있는 기형적으로 꺾인 소나무의 형태를 눈에 깊이 새겨 넣었다. 오두막에서 북동쪽으로 약 800미터 거리. 머릿속으로 완벽한 지형도를 그렸다.
그녀는 감자가 가득 든 무거운 자루를 등 뒤로 둘러업고, 오른손에는 덫을 부수던 망치를 지팡이 삼아 짚었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숲의 위험 요소를 물리적으로 제거했고, 막대한 열량 창고까지 확보했다.
어미 여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수호석의 결계 안으로 무사히 귀환했을 때, 해는 이미 하늘의 중간 지점을 넘어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오두막 앞 공터는 고요했다. 격리 병상의 그림자 늑대는 그녀가 나갈 때와 똑같은 자세로 건초 위에 엎드려 있었고, 처마 밑 케이지 안의 은회색 담비 역시 새근거리며 잠들어 있었다.
쿵.
소영은 자루를 화덕 옆에 내려놓았다.
“식량 문제는 해결했고, 주변 청소도 끝냈는데….”
그녀는 허리에 손을 얹은 채 공터의 가장자리에 세워둔 자신의 '병원 간판’을 응시했다. 어설픈 나무판자에 숯으로 발자국을 그려 넣고 칡넝쿨로 기둥에 묶어둔 조잡한 표지판. 가까이 다가오지 않으면 그것이 단순한 나무토막인지 의미를 가진 기호인지조차 구별하기 힘들었다.
‘어젯밤 담비는 운이 좋아서 저 간판 근처까지 기어왔지. 하지만 상처 입고 피를 흘리는 짐승들이 이 결계의 경계선을 정확히 찾아 들어오는 건 너무 확률이 희박해. 숲에서 시야가 닿는 곳, 최소한 멀리서도 이곳이 피난처라는 걸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이정표가 필요해.’
소영의 뇌리에 새로운 인프라 구축의 설계도가 떠올랐다.
그녀는 휴식을 뒤로 미룬 채, 오두막 벽면에 세워둔 목공용 톱과 남은 나무 기둥들을 살폈다.
목표는 극단적인 시각적 대비를 만들어내는 것.
이계의 숲은 사시사철 짙은 초록색과 검갈색의 나무 기둥들로 꽉 들어차 있어 시야가 몹시 어두웠다. 소영은 그 중에서 가장 곧고 긴, 3미터가 넘는 백자작나무 가지 세 개를 끌어왔다.
그녀는 엘프의 뼈칼을 집어 들었다. 칼날의 각도를 눕혀 자작나무의 겉껍질을 대패질하듯 깎아내기 시작했다.
스으윽, 샤아악.
회갈색의 거친 껍질이 벗겨져 나가자, 그 아래에서 눈이 시릴 정도로 새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뼈칼의 절삭력 덕분에 옹이 자국 하나 없이 매끄러운 원통형의 하얀 기둥 세 개가 순식간에 완성되었다. 빛을 반사하는 하얀색은, 짙은 숲의 배경 속에서 형광펜으로 선을 그은 것처럼 극단적으로 도드라져 보였다.
단순한 기둥만으로는 부족했다. 방향을 지시해야 했다.
소영은 남은 나무토막들을 쐐기 모양의 화살표로 다듬었다. 화덕에서 타다 남은 굵은 숯덩어리를 집어, 화살표의 양면에 진하고 굵은 선으로 짐승의 ‘발바닥 십자가’ 문양을 반복해서 그려 넣었다. 하얀 나무와 검은 숯의 대비. 인간의 언어는 배제하고, 오직 시각적인 직관성에만 의존한 디자인이었다.
완성된 하얀 기둥에 검은 화살표 나무판을 굵은 쇠못으로 단단히 박아 고정했다.
깡! 까앙! 깡!
쇠망치의 타격음이 늑대의 귀를 쫑긋거리게 만들었지만, 녀석은 소영이 하는 기이한 행동을 잠자코 지켜보기만 했다.
소영은 무거운 표지판 세 개를 어깨에 짊어지고, 다시 결계의 경계면으로 향했다.
수호석의 마법이 미치는 반경 30미터의 끝자락. 그녀는 공기가 미세하게 왜곡되는 바로 그 지점의 북쪽, 서쪽, 남쪽 가장자리에 간격을 두고 멈춰 섰다.
“이 정도 위치면, 결계의 은폐 마법에 가려지지 않고 숲의 먼 곳에서도 보일 거야.”
그녀는 바닥의 흙을 깊게 파내고, 새하얀 백자작나무 기둥을 수직으로 단단히 박아 넣었다. 돌덩이들로 기둥 밑동을 빈틈없이 채워 흔들리지 않게 고정했다. 기둥 위쪽에 매달린 화살표는 정확히 결계의 중심, 오두막을 향하도록 각도를 맞췄다.
뒤로 몇 걸음 물러서서 숲의 방향에서 표지판을 바라보았다.
어두컴컴한 양치식물과 거목들의 바다 한가운데, 기이할 정도로 하얗게 빛나는 3미터짜리 기둥과 검은 화살표.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풍경을 폭력적으로 찢어발기며 서 있는, 완벽한 인공의 등대였다.
바람이 불어 표지판 주변의 잎사귀들을 흔들었지만, 단단하게 박힌 이정표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세 개의 이정표를 모두 설치하고 공터로 돌아온 소영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머리카락은 땀에 절어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고, 손등에는 나무껍질에 긁힌 자국과 흙먼지가 가득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결코 지쳐 있지 않았다.
“이제 덫도 없고, 길도 열어뒀어.”
소영은 허리에 찬 뼈칼의 자루를 어루만지며 숲의 사방을 둘러보았다.
덫을 박살 내어 반경 1킬로미터의 안전지대를 무력으로 확립했고, 무한에 가까운 식량 창고를 찾아냈으며, 상처 입은 것들을 자신의 수술대 위로 인도할 거대한 하얀색 등대들을 세웠다.
더 이상 그녀는 숲의 변덕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연약한 조난자가 아니었다. 이 통나무 오두막을 중심으로 한 공간은, 철저하게 그녀의 의지와 규칙에 의해 통제되는 하나의 독립된 영지로 거듭나고 있었다.
“다음 환자는 헤매지 않고 올 수 있을 거야.”
오두막 앞 진찰용 테이블에 비스듬히 기대선 소영의 등 뒤로, 그림자 갈기 늑대의 낮고 묵직한 호흡 소리가 이 영지의 엔진 소리처럼 규칙적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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