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이세계 숲속 동물병원 (20화: '선배 환자' 새끼 여우의 따뜻한 위로, 덫에 걸린 은회색 담비의 밤샘 수술)

 은회색 담비의 몸은 한 손으로 들어 올릴 수 있을 만큼 가벼웠다.


그러나 그 작은 골격이 뿜어내는 공포의 밀도는 엄청났다. 소영이 짐승의 흉곽 아래로 두 손을 집어넣어 들어 올리자, 근육이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것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파괴된 오른쪽 뒷발목에서 흘러나온 검붉은 피가 그녀의 손목을 타고 끈적하게 흘러내렸다. 손바닥에는 아까 덫을 억지로 벌리느라 묻은 붉은 녹의 쇠 냄새가 비릿하게 배어 있었다.


오두막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숲의 차가운 밤공기가 차단되고 화덕의 잔열이 남아 있는 건조하고 따뜻한 공기가 훅 끼쳐왔다.


소영은 램프를 나무판자 위에 올려두고, 건초 더미 위로 담비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램프의 노란 불빛 아래서 확인한 담비의 상태는 심각했다. 극심한 출혈과 장시간 덫을 끌고 다닌 충격으로 인해 짐승의 체온은 치명적인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다. 호흡은 얕고 불규칙했으며, 등줄기를 따라 돋아난 푸른 포자들의 빛조차 희미하게 명멸하며 꺼져가고 있었다.


“체온부터 올려야 해.”


소영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어제 시장에서 금화를 주고 사 온, 두껍고 푹신한 양털 누비 침구에 닿았다.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녀는 허리춤에서 예리한 뼈칼을 뽑아 들었다. 양털 침구의 끝자락을 거칠게 움켜쥐고 칼날을 밀어 넣었다.


찌이익— 서어억.


질긴 캔버스 천이 부드럽게 갈라지며, 그 안을 꽉 채우고 있던 하얀 양털이 눈송이처럼 쏟아져 나왔다. 소영은 침구의 4분의 1가량을 완전히 잘라내어 두툼한 모포 조각을 만들었다. 흙먼지와 핏자국으로 엉망인 담비의 몸 위로 그 깨끗한 양털 조각을 빈틈없이 덮어씌웠다. 짐승의 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두껍게 말아 보온의 층을 형성했다.


그때, 소영의 발치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새끼 여우였다. 잠에서 깬 여우는 오두막 안에 진동하는 새로운 피 냄새에 코를 킁킁거리더니, 쭈그려 앉은 소영의 무릎을 스치고 지나가 건초 더미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여우는 피투성이가 된 담비를 보고 이빨을 드러내거나 경계하지 않았다. 오히려 녀석은 양털 모포의 틈새를 주둥이로 능숙하게 파고들더니, 바들바들 떨고 있는 담비의 척추에 자신의 따뜻한 배와 옆구리를 바짝 밀착시킨 채 둥글게 몸을 말았다. 생체 난로나 다름없는 체온의 공유였다.


담비가 낯선 포식자의 체취에 놀라 움찔하며 옅은 비명을 지르려 했다.


바로 그 순간, 새끼 여우의 귓바퀴가 팽팽하게 당겨지며 낮고 일정한 파동이 공기를 타고 번져나갔다.

(나도 다리 부러졌었어. 여기 누나가 고쳐줄 거야. 안 무서워해도 돼.)


소영의 뇌리에도 선명하게 꽂히는, 투박하지만 완벽한 논리를 갖춘 텔레파시였다. 겁에 질린 피식자에게 건네는, 동일한 고통을 겪고 살아남은 '선배 환자’의 보증.


그 파동의 힘은 압도적이었다. 담비의 거칠고 불규칙했던 호흡이 허공에서 한 번 크게 턱, 하고 걸리더니, 여우의 일정한 흉곽 움직임에 동기화되듯 서서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근육을 파괴할 듯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담비의 뒷다리 경직이 눈에 띄게 풀리며, 짐승은 여우의 붉은 털에 자신의 은회색 코를 파묻은 채 깊은숨을 토해냈다.


“…너, 진짜 다 컸네.”


소영은 여우의 이마를 가볍게 쓸어주며 중얼거렸다. 피식자의 극단적인 스트레스가 통제되자, 수술을 위한 최적의 조건이 갖춰졌다.


소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무 선반으로 향했다. 증류주를 손에 조금 부어 비비며, 덫의 녹과 흙먼지가 엉겨 붙은 손바닥을 거칠게 소독했다. 상처에 닿은 알코올이 타는 듯한 작열통을 일으켰지만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녀는 도마 대용 나무판자 위에 깨끗한 무명천을 깔았다.


어제 새로 만든 수면 구근 희석 마취액 병, 엘프의 뼈칼, 끝이 둥글고 가느다란 뼈 탐침, 두꺼운 무명실과 쇠바늘, 그리고 돌절구에 찧어둔 야생 쑥 가루를 차례대로 배열했다. 램프의 심지를 끌어올려 불빛을 최대한 밝게 조정한 뒤, 담비의 오른쪽 뒷다리를 덮고 있던 양털을 살짝 걷어냈다.


“다리 상태 좀 보자.”


빛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난 발목은 처참했다. 무쇠 덫의 톱니바퀴가 피부와 피하 지방층을 완전히 짓이겨 놓았고, 절단면을 따라 검붉은 피딱지가 거미줄처럼 엉겨 있었다. 장시간의 압박으로 인해 발목 아래쪽의 발바닥 패드는 창백하게 탈색되어 피가 통하지 않은 허혈 상태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소영은 가장 먼저 마취액이 담긴 유리병의 코르크를 열었다.


깨끗한 나뭇가지 끝에 투명하고 달콤한 냄새가 나는 액체를 듬뿍 찍어, 담비의 짓이겨진 발목 상처 위에 직접 펴 발랐다.


싸아아—.


액체가 혈관을 타고 스며드는 순간, 담비의 몸이 아주 작게 한 번 펄떡거렸다. 하지만 이내 액체가 닿은 뒷다리 전체의 근육이 얼음물에 담긴 것처럼 완벽하게 이완되며 축 늘어졌다. 담비의 눈꺼풀이 무겁게 감기며, 여우의 품 안에서 완전히 깊은 마비의 수면 속으로 빠져들었다.


마취가 돌았음을 확인한 소영은 지체 없이 엘프의 뼈칼을 집어 들었다.


“괴사한 조직부터 잘라낸다.”


그녀는 칼끝을 눕혀, 덫의 톱니에 짓눌려 보라색으로 죽어가는 가죽의 가장자리를 도려내기 시작했다. 뼈칼은 피식자의 얇은 가죽을 종이장처럼 가볍게 베어냈다. 저항감 없는 서늘한 절삭의 감각. 그녀는 잘려 나간 죽은 살덩어리들을 바닥에 버리고, 증류주를 적신 무명천으로 상처 주변을 깨끗하게 닦아냈다.


오염된 조직이 걷히자, 붉은 근육 다발 사이로 하얀 뼈의 표면이 드러났다.


“뼈가 부러졌는지 확인해야 돼.”


그녀는 뼈칼을 내려놓고 가느다란 뼈 탐침을 집어 들었다. 뭉툭한 탐침의 끝을 벌어진 근육 틈새로 조심스럽게 밀어 넣어, 경골과 비골의 표면을 따라 가볍게 긁어내렸다.


오도독, 스윽.


뼈와 뼈(탐침)가 마찰하며 둔탁한 진동이 소영의 손끝으로 전해졌다. 시각에 의존할 수 없는 상처 내부의 구조를 촉각으로 맵핑하는 작업.


‘완전 골절은 아니야. 하지만 덫의 압력 때문에 뼈 표면에 미세한 금이 갔어. 체중을 실으면 부러질 위험이 커.’


진단이 끝났다. 소영은 쇠바늘에 무명실을 꿰어 들었다.


담비의 가죽은 그림자 늑대처럼 억세지 않아서 바늘이 비교적 수월하게 들어갔다. 그녀는 벌어진 피부의 양 끝을 모아 쥐고 촘촘하게 바늘땀을 떴다. 피가 통하지 않아 창백했던 발바닥 쪽에, 덫의 압박이 풀리고 마취액이 혈관을 이완시키며 서서히 붉은 혈색이 돌아오는 것이 눈에 보였다.


여섯 바늘.


지저분했던 상처가 일직선의 매끄러운 봉합선으로 정리되었다. 소영은 야생 쑥 가루에 물을 개어 만든 짙은 녹색의 반죽을 봉합 부위 위에 두껍게 덮어 발랐다. 알코올처럼 강력한 살균력은 없지만, 장기적인 항균 작용과 염증 억제에 효과적인 조치였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땔감 무더기에서 가장 곧고 얇은 나뭇가지 두 개를 골라냈다.


식칼로 나뭇가지의 겉껍질을 다듬고 길이를 맞춘 뒤, 담비의 발목 양옆에 대고 깨끗한 무명천으로 단단하게 감아올렸다. 미세하게 금이 간 뼈가 뒤틀리지 않도록 지지해 주는 초소형 부목이었다.


“끝났다.”

소영은 바늘을 내려놓고 깊은숨을 토해냈다.


이마에서 뚝 떨어진 땀방울이 피 묻은 도마 위로 번졌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신경줄이 끊어지자, 시야의 가장자리가 흐릿해지며 엄청난 피로가 몰려왔다.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젖은 천으로 피 묻은 도구들을 거칠게 닦아냈다.


램프의 기름이 바닥을 드러내며 불꽃이 가물거리고 있었다.


소영은 건초 더미 위를 바라보았다. 붉은 새끼 여우와 은회색 담비가, 잘려 나간 양털 모포 아래에서 엉겨 붙은 채 평화롭게 잠들어 있었다. 한 마리는 자신이 뼈를 맞추어 살려냈고, 다른 한 마리는 쇠덫에서 빼내어 방금 살을 꿰맸다. 이 좁고 더러운 흙바닥 오두막 안이, 숲의 어느 곳보다 안전한 성역으로 변모해 있는 기괴한 풍경.


‘인간이 만든 덫을, 인간이 풀어주고 꿰맨다니. 코미디가 따로 없네.’


소영은 피 묻은 자신의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숲의 짐승들을 학살하고 영역을 침범하는 것은 인간의 논리였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그 논리의 정반대 대척점에서, 이계의 생태계와 끈적하게 결합하며 자신만의 왕국을 다지고 있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피가 묻은 흙을 납작한 돌로 긁어모아 오두막 구석의 통에 담았다.


오두막의 나무 문틈 사이로, 칠흑 같던 어둠이 가시고 옅은 청회색의 새벽 여명이 스며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밤샘 수술이 끝났음을 알리는 숲의 시간. 소영은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문가로 다가가 고정해 둔 돌을 치우고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쏴아아—.


새벽의 찬 공기가 수호석 결계 안의 멈춰 있던 공기를 씻어 내렸다.


공터 중앙, 거대한 목재 우리 안에서 그림자 갈기 늑대가 벌써 눈을 뜨고 앉아 있었다. 황금색 눈동자가 문을 열고 나온 소영의 피곤한 얼굴과, 튜닉에 묻은 새로운 짐승의 피자국을 정확히 훑어 내렸다.


(…어둠 속에서 또 다른 피 냄새가 났지. 약한 것의 피 냄새. 쇠의 냄새. 네가 또 살을 엮었는가.)


늑대의 파동은 놀라움이 아닌, 당연한 사실을 확인하는 듯한 담담한 톤이었다. 오두막 안의 조그만 담비와 밖의 거대한 늑대. 생태계에서는 완벽한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철저하게 '한소영의 환자’라는 동일한 서열 아래 묶여 있었다.


“응. 귀찮은 손님이 와서 잠을 다 깼어.”


소영은 기지개를 켜며 목 관절을 꺾었다. 우두둑 소리가 맑은 공기를 갈랐다.


“밥 먹을 시간 멀었으니까 조용히 있어. 나 눈 좀 붙여야 하니까.”


늑대는 가볍게 콧김을 뿜어내고는, 건초 위로 다시 거대한 턱을 내려놓았다. 소영은 픽 웃으며 오두막 안으로 돌아갔다.


문을 반쯤 닫아둔 채, 그녀는 잘려 나간 흔적이 남은 양털 침구 위로 쓰러지듯 몸을 던졌다. 등 아래로 느껴지는 푹신함 속으로, 남은 의식이 늪처럼 빠져들어 갔다. 오두막 안의 짐승 숨소리, 밖에서 대기하는 포식자의 묵직한 기척.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자장가였다.


🏥 현재 진료소 상태 요약
🏥 현재 진료소 상태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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